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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Feb 09. 2024

그때의 명절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에세이를 읽으며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마 추석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번 명절이 되면 집에 내려갔는데 그때는 가고 싶지 않았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냥 힘들게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과정이 싫기도 했고, 약간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울에 머물기로 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얘기를 했다. 엄마는 “그냥 내려오지….” 라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집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걸 안 직장 언니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언니집에서 송편을 쪄 먹고, 과일을 먹고, 비디오를 보면서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하루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 지하철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서울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고향으로 내려간 모양이네. 서울은 낯선 이들이 만든 도시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북적이고 사람들로 붐볐던 모습은 사라지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섬처럼 묘한 상황이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은 낯설기도 했고 어색하면서 사람의 기분까지 이상하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사람의 기분을 만들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나름 괜찮았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쉬어서 좋았다. 


 명절이 끝나가는 마지막 날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친척들이 다 떠나고 나니 집에 오지 않은 내가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으며 엄마는 약간 울먹였다. 엄마의 걱정은 과한 것이었다. 나는 괜찮았다. 집에 가지 않은 건 특별한 이유도 특별한 사연도 없었건만 엄마는 내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여 걱정을 산더미처럼 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때 알았다. 내 가벼운 행동과 판단이 부모님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자식은 늘 염려스러운 존재이고 챙겨주고 싶은 사랑이었다.


 엄마는 작년에 수술을 하고 난 후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몸에 기운이 없다. 혼자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자꾸 넘어진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넘어져 우리를 부른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인지능력도 떨어졌다. 예전에는 문자나 카톡으로 사진도 보내고 재미있는 말도 보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운동을 할 때 곁에 누군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여 급수가 나왔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정부에서 대신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엄마가 늙어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다행히 아버지가 곁에 있으니 감사하다.


 그때의 명절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를…….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고,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생겼다. 

 철은 많이 들었나? 

 아, 그때 함께 지냈던 언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연락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서로 각자의 삶을 사느라 뜸해지고 조금씩 잊히고 있는 모양새다. 


 명절이란 무엇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움이 아직 남아 있는가. 

 계속해서 그러하길 바래본다.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여유가 생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보다가 이상한 희망까지 하게 되었다. 

 어제와 다른 내일이 되기를 오늘 둥그렇게 떠 오를 달을 보며 빌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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