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아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 질문을 해서 '헉... 저런 것도 궁금해하다니.....'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며칠 전일이에요. 둘째 등원 준비로 때문에 바쁜데 첫째가 이렇게 묻더라고요.
"엄마, 눈꺼풀을 뒤집으면 왜 이렇게 빨개? 왜 피부 색깔이랑 다른 거야?"
일주일 전에는 이런 질문도 했어요. 해수 어항에 소라 껍데기를 놔뒀는데 그게 둥둥 떠 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가라앉는 것을 보고 "엄마 저 껍질은 왜 시간이 지나서 가라앉은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아니 소라 껍데기가 바로 가라앉을 수도 있고, 조금 있다 가라앉을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렇게 궁금해?'라고 생각했지만 육아서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들었기에 "그러게"라고 말하고 보드판에 아이의 질문을 적었어요. 물론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엊그제는 저한테 입에 당면을 물고 손으로 쭉쭉 늘리면서 "엄마, 당면은 왜 젤리 같아?"라고 물었어요.
매번 "글쎄"라고 대답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당면은 뭘로 만들어질까?" 아이는 밀가루라고 대답했고, 저는 당면 포장지를 가져왔어요. 포장지 뒤 원재료명에는 고구마 전분 100%라고 쓰여있었죠. 저는 아이와 고구마를 물에 담그면 바닥에 가라앉는 것에 대해 얘기를 했고, 그것이 전분이며 전분가루를 가지고 놀았던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어요.
"전분 때문에 늘어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더니 이번엔 또 이렇게 물어요. "그럼 당면은 왜 투명한 색깔이야?"
'아니. 국수 중에는 투명한 것도 있고 안 투명한 것도 있고 뭐 그런 거지.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한 거지?'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아이의 호기심을 꺾는다고 하니 "그러게."라고 대답했어요. 아이는 다행히 거기서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아이의 이런 질문들은 제가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궁금해해본 적이 없던 것들이자, '원래 저런 건데'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믿어왔던 것들이라서 어떻게 답변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그냥 얼버무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럼 같이 책을 찾아보자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대체 어느 책을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때도 많고요.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공유해 준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영상을 보고 '아이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하는 이유'와 '제가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었던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평가되는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코넬대의 이론 물리학 조교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어요. 1954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을 수상하였고, 1965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어요.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단편적인 대답보다는 많은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자석은 왜 서로 밀어내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를 보면서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파인만 교수는 '자석은 왜 서로 밀어내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이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모가 빙판 위에서 넘어지신 것'을 예로 듭니다. 이모가 빙판 위에 넘어지셔서 병원에 가셨다는 걸 외계인에게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외계인의 경우 고관절을 다치면 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이모가 고관절을 다쳤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게 되었는지 등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합니다.
'왜'라는 질문에 설명할 때에는 서로가 참이라고 납득하는 일련의 범주 안에서 설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질 거다. 그런데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세상에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면 더 깊고 다양한 방향으로 파고들게 된다고 하였어요.
이모가 빙판길에서 넘어진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봤을지도 모릅니다. '이모는 왜 빙판길에서 미끄러지셨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빙판이 미끄럽기 때문이지.' 여기서 끄덕 끄덕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왜 빙판은 미끄러운가요?' 다시 묻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파인만 교수님은 이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얼음만큼 미끄러운 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기름진 것 중 미끄러운 걸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고체인데 이렇게 미끄러운 것은 잘 없지 않나? 사실 빙판은 우리가 그 위에 서게 되면 순간적으로 가해진 압력이 얼음을 살짝 녹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물 표면 위에 올라타게 되어 미끄러지는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또 누군가가 '왜 빙판만 그렇고 다른 건 그렇지 않은 거죠?'라고 물을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물은 얼면 팽창하는데 이때 압력이 가해지면 팽창하는 걸 멈추려고 들고, 빙판을 녹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얼음은 녹는 게 가능하지만, 다른 물질은 얼게 되면 금이 가게 된다.
아이는 제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서 질문한 이유는 제가 참이라고 믿는 것과 아이가 참이라고 믿는 그 범주가 달라서 그랬던 것이더라고요.
아니면 저는 그게 의례 참이겠거니 하고 믿었지만, 아이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을 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아이는 '왜'라는 질문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게 되고, 세상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더 깊게 사고할 수 있게 된다고 해요.
리처드 파인만 교수는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의 질문에 다양한 수준으로 답변을 합니다. 질문자가 물리학을 전공한 학생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인지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면서요. 만약 질문자가 물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자기력 때문에 자석이 서로 밀쳐내려 하는 것이다. 이때 가해지는 힘을 당신이 느낀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질문자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질문자에게 친숙한 개념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제가 아이의 질문에 자주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이건 부모의 능력 밖이야'라고 치부하기엔 또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한 반에 30명이나 되는 학교에 이걸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진도 빼기에 급급한 학원은 또 어떻고요.
결국엔 가능하다면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질문을 통해 관심사를 파악하고, 평소 대화를 통해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고, 친숙한 개념은 뭔지 인지하여 아이의 질문에 적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요.
그럼 아이의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작년 12월에 수강한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엄마표 과학> 수업에서 엄마는 과학쌤님은 아이의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을 해보면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질문의 근거 찾기
-생각의 순서를 파악하여,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해 보기
-질문을 단계별로 나누고, 가설을 세워보게 하기
김경희 교수님의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부모는 아이가 뜻밖의 질문, 이상한 질문,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질문이 학습 진도를 방해할지라도 함부로 비웃거나 나무라지 말고 "그 질문은 이런 면에서 참 특별하네."라고 칭찬하는 게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질문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때 아이의 흥미는 더 커진다.
이때 아이의 질문에 바로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질문을 화이트보드처럼 정해진 곳에 적어서 부모가 아이의 질문과 호기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중략-
아이가 어려운 질문을 할 때는 다음 순서대로 답하는 것이 좋다.
첫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가 질문으로 더 깊은 질문을 유도한다.
-왜 이 질문을 했니?
-이 질문이 무슨 뜻이고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이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둘째, 아이와 함께 답을 찾거나, 답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아이의 질문을 대화의 기회로 만든다.
셋째, 한 질문에 대한 논쟁이 산만하고 무질서해 보이더라도 아이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천천히 생각하고 말하게 둔다.
넷째, 도서관에 가거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아이의 이해력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자료를 함께 찾아본다.
다섯 번째, 쉬운 답을 바로 선택하는 대신 정확하고 자세한 답을 찾게 한다.
여섯 번째, 아이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이것에서 무엇을 느꼈니?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만약~라면 어떻게 될까?
일곱 번째, 아이와 답을 찾기 위해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하고, 더 깊은 단계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자원과 활동을 제공한다.
여덟 번째, 아이의 문제 해결 과정을 지켜보고 아이가 발견한 결과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질문한다.
아홉 번째, 아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자유롭게 실수하거나 실패하게 하고, 스스로 실수를 바로잡을 방법을 찾게 한다.
틀 밖에서 놀게 하라, 김경희 저, pp.85-88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 따르면 '노력'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부모가 많은데 실제로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영감'과 '호기심'이라고 해요. 부모가 해야 할 것은 어쩌면 문제집 한 장 푸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에 궁금증을 가지고, 끝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