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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Oct 08. 2024

생후 9개월, 아이의 서서 보는 세상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기가 누워서 보는 세상, 앉아서 보는 세상, 서서 보는 세상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인지능력도 달라진다고 한다. 

'어디서 들었지?'

정확한 근거를 댈 순 없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발달이 조금 빠른 것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었다. 오히려 생일이 좀 늦어, 또래 친구들보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고민했었으니까... 하지만, 키워보니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과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 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보내면서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들보다 빠르게, 서서 보는 세상을 접했기 때문에, 인지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지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오~ 저 말(첫 문장) 근거 있는데?'    


생후 8개월부터 시작된 혼자 서기 연습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9개월에 접어들자마자 결국 한 발을 떼서 앞으로 나갔다. 겨우 한 발이긴 했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발가락에 힘을 딱 주고 중심을 잡는 게 대단해 보였다.

한 발 떼기가 가능해지니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연습을 또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울 아들은 위험한 행동을 덜한 편이었던 것 같다. 소파 외엔 어디 올라가려고 하진 않았고, 내려올 때는 뒤로 내려오는 걸 처음부터 가르쳐서인지 안전하게 오르내렸다. 아무래도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위험한 곳, 위험한 것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많아지니 사소하게 다치는 일도 많아지긴 했다. 적어도 1명 이상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는데도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낯선 소리에 아직은 민감하게 반응해서, 미니 카의 바퀴 돌아가는 소리에도 겁을 먹었다. 

의사표현이 다양해지기 시작하면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웅얼거리거나, 하고 싶어 하지만 위험할 것 같아 못하게 하면 몸을 비틀면서 짜증을 내고 고집도 피우기 시작했다. 


곤지곤지도 하기 시작했다. 

"오잉? 손뼉 치기, 도리도리, 죔죔을 다 마스터하고 이제 곤지곤지를 한다고?"

어쨌든,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하는 곤지곤지는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동요를 틀어주면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리듬을 타는 것 같았고, 선호하는 동요도 생겼다. 다양한 동요를 랜덤으로 틀어주었었는데, "짝짜꿍"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지 반응이 남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심심하다 싶으면 라디오 카세트(그땐 카세트테이프여서) 앞에 가서 그 노래를 틀어달라고도 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


이 시기, 혼자서 조용히 놀고 있거나, 창밖을 쳐다보고 있거나 하는 날들도 꽤 있었다. 

그럴 땐 특별히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가만히 지켜봤고, 다른 반응이나 행동을 보이면 바로 함께 놀아주기 모드가 되었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지만, 추석맞이 독감예방접종 후유증인지, 아님 그냥 감기인 지 컨디션이 나빠 보여 못 나가게 했더니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길래 창밖을 보는 건 아무래도 밖에 나가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가 출근할 때, 혹은 늦게 퇴근하는 날에도 창밖을 본다고 하니, 뭔가 짠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생후 285일째,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이가 간지러워 그러는 건지, 그냥 장난치는 건지 알 순 없었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메롱을 열심히 연습했다. 아이의 새로운 행동이 나타날 때면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매 순간 습관으로 굳어져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 너무 예민한가?'

다행히 혀를 날름거리는 건 아무래도 이가 간지러워서였던 것 같았다. 생후 299일째, 이가 하나 더 올라오기 시작했다. 앞니 2개씩 해서 총 4개의 이가 나 있는 상태였고, 다음 차례는 윗니라고 했는데, 울 아들은 아랫니부터 나기 시작했다. 이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며칠간 칭얼칭얼 대는 횟수가 느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었는지 과거의 육아일기에 순한 아이인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 써 놓았다. 


생후 9개월 이 시기엔 역시나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자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온 가족이 아이의 성장 발달에 신경을 많이 썼다. 키는 얼마나 컸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는지가 항상 궁금해, 기린 키재기 판을 벽에 설치했다. 아직 9개월이긴 하지만, 혼자 잘 서 있어서 키를 재어봤더니 72cm였다. 한국 소아 발육 표준치에 약간 미달이긴 했지만, 거의 평균에 가까워진 것 같아 안심을 했었다. 


놀이 육아도 점점 진화해 갔다. 개월수에 맞는 장난감을 틈틈이 사주었고, 지인으로부터 물려받거나 선물 받은 것들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생후 9개월에 가장 잘 갖고 논 것은 2가지 종류의 블록이었다.

하나는 내가 사다 준 모양 맞추기 블록. 틀의 모양(세모, 네모, 동그라미, 별 모양 등)과 같은 블록을 찾아 끼우는 장난감이었는데, 물건을 잡는 손가락 움직임도 괜찮고 해서 사다 줬었다. 생각보다 잘 가지고 놀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하게 모양 맞추기를 클리어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는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원목 블록. 아마 어떤 교구의 일종이었던 것 같긴 한데, 양도 많고 모양도 다양해서 만져보고, 끼워보고, 쌓아보는 등의 놀이를 했다. 

사실, 그 당시엔 아기의 소근육 발달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개념 같은 건 없었다. "소근육"이란 단어도 생소했던 것 같다. 그저 손으로 물건을 잡고, 만져보는 것을 잘하길래 이맘때쯤엔 이런 게 필요하겠다 싶어 사주거나 놀아주었던 거지 계획적이고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소근육 발달에 매우 유익한 활동들이었지만.     


그 밖에,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아이의 장난감이 되었다. 특히 주방용품들(그릇, 냄비, 소쿠리, 바구니, 국자 등)은 정말 멋진 음악도구였고, 특별히 위험한 물건이 아닌 이상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보여주었고,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울 아들이 놀 때면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지만, 친정엄마의 배려로 노는 그 순간만큼은 집이 곧 아이의 놀이방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걸레질하는 모습, 청소기 미는 모습 등을 눈여겨봐두었다가 따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가 걸레질을 하겠다 하면, 우린 말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걸레 대신 수건이나 옷 등을 쥐어주고, 여기도 닦아달라, 저기도 닦아달라 했더니 제법 야무지게 닦아 주었다. 아이에게는 집안일이 아니고, 그저 놀이일 뿐이겠지만, 해내고 나면 항상 칭찬으로 마무리했다. 무지 뿌듯해하던 표정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에필로그]

퇴근 시간이 조금 늦어진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앞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내 품에 파고들며 펑펑 울었다.

"얘,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내 말이. 마치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듯이 이러네. 참."


낮 동안 엄마, 아빠 옹알이조차 안 하고 신나게 놀았고, 잘 먹었고, 낮잠까지 푹 잘 잤는데, 거짓말처럼 엄마가 오니 저런다고 친정엄마와 동생이 무척이나 억울해했었다. 

정확한 시간 개념이 있진 않았겠지만, 뭔가 조금 엄마의 부재가 길어졌다고 느꼈나 보다 싶어, 아이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한참을 안아준 적이 있다.

가끔이긴 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일하러 가는 엄마의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게 느껴져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매번 말하지만, 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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