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일관성" 가지기.
모든 육아책에 "일관성" 있는 양육태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일관성"이란 게 참, 쉽지가 않았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도 일종의 워킹맘이라, 주양육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구들의 도움 없이는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친정 식구들이 내 육아스타일에 대부분 맞춰줘서 큰 갈등 없이, 큰 혼란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능은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의 모든 육아가 완벽했던 건 아니다.
대학원 생활과 육아 외 모든 살림을 친정엄마께서 전적으로 맡아주셨다 보니 워킹맘(?) 치고는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육아도 도와주는 식구들이 많아서 부담이 확실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 머리와 행동이 따로 노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아이가 점점 자라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고, 고집도 생기고, 짜증도 내고, "안돼", "하지 마" 같은 부정어를 쓸 일이 많아질수록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 버럭 하는 날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첫 돌 전에는 마냥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습관이란 걸 만들어줘야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줘야 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게 유도해 줘야 하고, 인지나 정서적인 부분도 신경 써줘야 하고 등등 한 아이를 키우는데,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에 정성을 쏟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 것에 0.000001%의 후회도 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면서 한 생명체를 낳고 길러내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숭고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육아는 솔직히 말해, 진짜 힘든 순간이 너무 많지만 아이의 미소, 아이의 스킨십, 아이와의 눈 맞춤,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로 그 모든 힘든 순간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인 것 같다.
누가 그러던데, "육아는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란다. 그 말, 진심 동의한다.
생후 10개월, 울 아들에게 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우선, 윗니가 하나 더 나와 이가 모두 6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젠 걷기 시작했다. 손에 장난감을 하나 쥐고도 잘 걸어 다녔다. 하지만, 바닥에 있는 작은 장애물에도 잘 걸려 넘어졌다. 그러다 빨래를 개려고 쌓아놓은 빨래더미에 걸려 넘어져 벽 모서리에 얼굴을 찧는 사고가 났었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걷는 실력이 늘어나 생후 10개월 막바지엔 넘어지는 일 없이 온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단, 생후 10개월의 걸음마는 집안 한정이었다. 이미 8개월 무렵부터 두 손을 잡아주면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였고, 10개월엔 이미 혼자서도 잘 걸어 다녔지만, 밖에서는 혹시 혼자 걷다 사고가 날까 봐, 안거나 유모차를 태워 다녔고, 신발보다는 미끄럼방지용 양말을 신겨 다녔다.
아이에게 기억력이란 게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추석 명절 이후, 약 보름 만에 시어머니 생신이 다가와서 시댁에를 또 갔다 왔다. 그런데, 추석날 그렇게도 낯설어하던 할머니를 알아보고 잘 안겼다. 덕분에 할머니께 좋은 생신 선물이 되었다.
옹알이와 표정변화도 점점 예사롭지 않게 되었다. "아빠"라는 말이 제일 쉬운지, 하루종일 "아빠, 아빠, 아빠빠빠" 하면서 돌아다녔고,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해 다양한 소리와 표정으로 표현했다.
행동은 또 어찌나 재빠른지. "내가 할 거야 병(?)"이 시작되었는지 이유식도 자기가 먹겠다고 숟가락을 휘저었고, 물도 자기가 먹겠다고 나섰다. 이가 나는 중이라 침도 흘렸고, 감기에 걸려 콧물도 났고, 열심히 돌아다니니 땀도 났고, 어설픈 숟가락질로 인해 이유식을 온 얼굴로 먹어, 차마 볼 수 없는 몰골이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물론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을 때 말이다. ㅎㅎㅎ).
그리고, 아무래도 사물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 같았다. 생후 319일째, 친정아버지께서 받아보시는 종이 신문에 광고지가 하나 따라 들어왔는데, 그 광고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 많은 사진들 중 우리 집에 있는 곰인형과 비슷하게 생긴 곰인형을 찾아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잉, 이 작은 걸 어떻게 찾았지?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
엄마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육아일기에 "울아들은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생후 10개월에 접어들면서, 다시 병치레가 시작되었다.
생후 310일째, 독감 2차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 안색이 안 좋다고 하셔서 피검사를 했는데, 빈혈이었다. 사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 안색이 안 좋다고 말씀하기 전까진 전혀 몰랐다. 잘 놀았고, 잘 먹었고, 잘 쌌고, 잘 잤고. 아이의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빈혈이라니...
처음에는 간이 검사를 위해 손가락에서 피를 뽑았는데 빈혈로 나와서, 정밀검사를 하기 위해 손등에서 피를 좀 많이 뽑았다. 아팠는지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정밀 검사 결과는 이틀뒤 나왔고, 철결핍성 빈혈이었다.
앞으로 1 ~ 3개월 정도 중간중간 검사를 해보면서 철분제를 복용해야 된다는 결과를 들었다.
'분명 모유수유도 잘하고 있었고, 이유식으로 소고기도 꾸준히 먹였는데, 뭐가 부족했던 걸까?'
피를 뽑느라 생긴 손등의 멍이 며칠 동안 가시지 않았고, 그날 많이 힘들고 나름 충격이었는지 며칠간 자면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후, 빈혈약을 꾸준히 먹이면서, 음식에도 신경을 좀 더 썼더니, 아이 볼이 발그레해졌다.
'아, 원래 이런 안색이었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밤잠도 더 잘 자는 것 같고, 낮에 칭얼대는 것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냥 짜증이 늘었다고 생각한 게, 몸이 힘들어서였을 수 있다 싶으니 마음이 안 좋았다.
빈혈약은 이후 꽤 오랫동안 먹였던 것 같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빈혈 수치를 확인했었다. 참, 빈혈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모유는 끊지 말라고 하셔서 아침 출근 전과 잠들기 전, 꾸준히 모유수유를 했었다.
생후 10개월 시기는 빈혈과 감기로 컨디션이 엉망이었을 텐데도 여전히 열심히 놀았다.
호기심이 많은지, 만져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다. 아기 자동차를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아서 태워보려고 했더니, 본인이 타기보다는 미는 걸 더 좋아했고, 자동차 밀기가 끝나면 자동차 수납공간을 뒤지고 바퀴를 살펴보며 놀았다.
또, 책도 좋아했다. 잠들기 전, 모유수유 후에는 꼭 책을 읽어주면서 재웠는데, 낮에도 책을 가까이했던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게 아니라 책을 가지고 잘 놀았다. 그 당시 책은 주로 개월수에 맞는 걸로 선택해 사줬지만, 물려받은 책들도 많아서, 그림책, 숫자책, 생활습관책 등 다양한 책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밖에 공놀이(공 굴리기)도 좋아했고, 소리에 조금 익숙해졌는지 미니자동차 놀이도 좋아했다. 블록도 잘 가지고 놀았고, 외할머니 주방에 침입(?)해서 잽싸게 소쿠리 들고 도망치기, 바가지 들고 튀기 등, 걸어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놀이들도 늘어났다. 그래서 그런가, 입으로 물건을 가져가 맛보는(?) 증상이 많이 줄었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도 점점 논문 쓰는 일로 바빠졌다. 그래도 가능하면 주말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너무 바쁜 어느 날(생후 328일째) 도저히 주중에 일처리가 안돼 주말인데도 학교에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생겼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물론,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학교를 갔고, 그날 아이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큰 이모와 함께 파계사를 다녀왔단다.
엄마가 없는 주말을 행여 힘들어할까 봐 외출을 했다는데, 엄마가 없는 첫 외출임에도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 놀고 왔단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덕분에 친정 식구 한정 분리불안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