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8개월 육아 & 놀이(교육)
생후 18개월은 아이의 습관을 본격적으로 잡아주기 위한 노력들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대소변 훈련을 시작했고, 식습관도 잡아주려고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일에 생떼를 쓰는 것도 고쳐보려고 했다. 그래서,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해야 했는데, 때론 감정 조절에 실패하기도 했던 시기였다.
키는 계속 자라 평균보다 큰데, 몸무게는 몇 달째 그대로였다.
그리고, 18개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오전 낮잠, 오후 낮잠, 밤잠으로 나뉘던 수면 패턴이 낮잠과 밤잠으로 이분화되었다. 아침 기상은 7~8시 사이, 낮잠은 1시간 30분 ~ 2시간 정도, 밤잠은 9~10시 사이에 잤다.
젖은 완전히 떼서 밤잠도 그냥 토닥토닥해주면 잤다. 물론 아직은 미련이 남았는지 가끔 품에 안겨 소심하게 가슴을 만지작만지작하긴 했지만, 더 이상 젖을 먹겠다고 떼를 쓰진 않았다.
아이의 수면 의식은 일정한 시간대에 어둑어둑해지게 독서등만 켜 두고, 같이 누워 책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보통 책을 읽어주다 보면 잠드는 아이도 있다는데, 울 아들은 그런 경우가 많진 않았다. 보통은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약간 졸린 지 눈을 비볐고, 그때 토닥토닥해 주면서 옛날이야길 들려주면 잠이 들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테이프나 CD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 혼자 두지 않았고, 곁에서 항상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목소리 강약 조절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안녕, 버스, 매미 같은 두 글자 단어 말하기를 시작했다. 옹알이가 빨라서 말을 좀 더 빨리 할 줄 알았는데, 시작점은 평균정도였던 것 같다. 대신 빠른 속도로 말이 늘어 개월수가 늘어갈수록 편해졌다.
아침에 아빠와 내가 출근할 때마다 하던 출근의식이 좀 길어졌다.
일단, 희생양은 아빠. 현관 앞에서 아빠 출근을 배웅한 후, 아빠가 1층에 나타날 때까지 발코니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가 보이면 그때부터 "아빠" 하면서 목청껏 부르면서 "바이바이"를 했다. 그 덕에 울 신랑은 계단실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지하주차장 입구까지(그 당시 살던 친정집이 옛날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을 가려면 지상을 통과해야 했다.) 열 번도 넘게 아이의 부름을 받고 올려다보면서 "바이바이"를 해줘야 했다. 베란다 창문에 붙어 아빠와 교신(?)을 하니 위험할까 봐 덩달아 식구 중 한 명은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해서, 매일 아침 진풍경을 연출했다.
너무 좋으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고, 즐겁고 좋으면 빙글빙글 돌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신 맛이 나는 걸 주면 실눈을 뜨고 신 맛을 표현하는 등 감정 표현이 참 풍부했다.
"근데, 지금은 왜...."
어른 흉내는 나날이 디테일을 더했고 뭐든 따라 하려고 해서, 모두 아이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발을 사줬다. 지금까지 신고 있던 신발은 모두 주변 지인들, 친척들로부터 선물 받은 거였고, 엄마, 아빠가 사준 첫 신발은 "삑삑이 신발"이었다. 걸을 때마다 불도 들어오고, 소리도 나서 그런지 신기해하며 잘 신고 다녔다.
밖에 데리고 나가면 딸인지, 아들인지 헷갈려하셨고 "예쁘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그럴 때면, 갑자기 다소곳해졌고, 얼굴도 발그레해졌다. 그리고 어른들이 "넌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쁘니?" 하고 물으시면 십중팔구는 "아빠"라고 말했고, "어디가 제일 이쁘니?" 하고 물으시면 "눈"을 가리켰다.
다 알아듣는구먼...
아이의 18개월은 더운 6월이었다. 그래서 낮동안 바지와 기저귀를 벗겨놓을 수 있을 것 같아 대소변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미 13개월 무렵부터 변기(의자)와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그랬는지, 대소변 가리는 흉내(대변이나 소변이 마려우면 변기에 가서 앉아 누는 흉내를 냈었다. 물론, 기저귀를 차고 있었지만.)를 가끔 내곤 해서,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D-day도 잡기 전에, 날이 덥길래 기저귀도 채우지 않은 채 바지를 벗겨뒀는데, 화장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얼결에 소변을 눠버렸다. 아이는 좀 당황해했지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물놀이를 거의 다 끝낼 무렵, 곁에서 지켜보다가 소변을 눌 것 같아 아기용 변기에서 소변통을 꺼내 갖다 대었더니 시원하게 누었다. 소변통에 쌌다고 칭찬을 듬뿍 해줬더니 신이 났는지, 그날 몇 번 더 소변통에 오줌 싸는 것을 성공했다. 물론, 100프로 성공은 아니었다. 내가 지켜보다가 소변통을 갖다 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옷에 싸거나 거실 바닥에 흘리거나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매일 대소변 훈련을 시켰더니, 스트레스를 좀 받는지 짜증을 내긴 했지만, 약 1주일 후 어느 정도 적응은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아이가 친하게 잘 지내던(?) 변기(의자)를 화장실 입구에 고정시켜 두었고, 소변과 대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자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쳤다. 소변은 서서 눠야 하다 보니 아기용 변기가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래서 어른들 변기 밑에 미끄럼방지 발받침대를 설치해 두고 사용하게 했더니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다만, 대변은 좀 시간이 오래 걸렸다. 18개월 당시 성공한 대소변 훈련은 1) 대소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자고 한다, 2) 소변은 변기에 서서 눈다, 3) 대변은 화장실 입구 아기용 변기 근처에서 싼다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후 완전히 기저귀를 뗄 때까지 대소변 훈련은 쭈욱 계속되었다.
대소변 훈련과 더불어 이 시기엔 식습관도 잡아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생후 8개월 무렵 이유식이 본격화되면서부터 아기용 식탁 의자를 사서 식습관을 잡아주는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14개월 육아일기에도 썼다시피, 식습관을 잡을 것이냐 잘 먹일 것이냐를 두고 저울질할 일, 예를 들면 아이가 아파서 입맛이 없다거나 하는 일 등이 생기면 일단은 잘 먹이는 쪽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이젠 18개월이나 되었으니,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식습관을 확실히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숟가락질을 잘하지 못하던 시기엔 본인이 하겠다고 그렇게 나대더니(?) 혼자 해야 하는 시기가 되니 하기 싫어했다. 가만 보니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는 것이었고, 하더라도 금세 싫증을 냈다. 그리고 밥 먹는 것보다 노는 게 좋은 지 밥 먹는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른들과 함께 하기, 밥은 혼자 떠먹기, 식사시간은 지키기 같은 규칙을 만들어 연습시켰다. 숟가락질을 하기 싫어하면, 어른들 숟가락을 쥐어줘서 조금 분위기를 환기시켜보기도 했고, 식사시간을 지키지 않고 놀려고만 하면 "지금 먹지 않으면, 점심은 없는 거야."라고 경고 후, 치웠다. 낮동안의 육아를 맡아준 외할머니와 이모에겐 고역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시기 우리 집에선 아이가 배고플까 봐 따라다니면서 밥을 먹이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배고프면 다 먹게 되어있다."는 말, 우리에겐 잘 통했다.
의사표현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게 많다 보니까 아직은 서로 힘이 들 때가 많았다. 이해심 많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은 했지만, 서툴렀고 가끔 감정절제가 안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식구들과 시장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시장 내에 있는 분식집에 들렀는데, 아이가 갑자기 이상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보통 집에서 아이를 혼낼 때는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이야길 했는데, 밖에서 이러는 경우는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 분식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되겠다 싶어 아이를 끌고 나간 후, 조용한 골목길을 찾아 아이를 안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아이의 화를 가라앉혔다. 나는 나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로 친정엄마께 처음으로 야단을 맞았다. 내가 아주 몰상식하게 아이를 질질 끌고 나갔단다.
그런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서 좀 억울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내 잘못이 맞다 싶었다. 분명 그 순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떼를 보고 감정 절제가 안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이를 끌고 나가는 손에 힘이 주어졌을 수도 있고, 남들 보기에 아주 독하고 나쁜 엄마로 비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 아이에게 낮의 일을 사과하고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낮의 일을 기억할 진 모르겠지만, 다시는 그런 식으로 엄마가 끌고 가지 않을게. 야단 칠 일이 있으면 인격적으로 사랑으로 혼을 낼 거고 감정 조절도 잘해볼게. 미안해."
아이는 내 약속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볼 뽀뽀를 해줬다.
"오늘 일 용서해 주는 거야?"
6월에 들어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물놀이로 보냈다.
혼자서 소꿉을 사는지 세숫대야 하나만 있어도 잘 놀았다. 볼풀공 텐트를 철거하고, 볼풀공을 넣은 풀장을 설치해 주었다. 한여름엔 풀장에 물을 담아 놀아주면 좋을 것 같아 미리 설치했다.
그림 솜씨도 나날이 늘어 크레파스 쓰는 힘, 필체의 힘이 진짜 좋았고 원도 잘 그렸다. 간혹 어른들 글자 쓰는 걸 흉내 낸다고 연필을 손끝에 잡고 세밀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도형 맞추기 책(? 장난감)을 사줬더니 자석으로 된 삼각형, 사각형, 갖가지 모양을 맞추며 잘 놀았다. 어찌나 집중력이 좋은지.
날이 화창하고 좋은 6월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우방랜드(지금은 이월드)에도 갔었다.
우방랜드 주차장에서 놀이공원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는데 놀러 가는 걸 아는지 들떠서는 그 먼 길을 열심히도 걸어갔다. 6월이지만, 날이 꽤나 무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도 길가에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참 열심히도 걸어갔던 것 같다. 아직 많이 어려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딱 하나, 회전목마밖에 없었지만, 아빠와 함께 타는 게 좋았는지 내릴 즈음엔 한 번 더 타고 싶어 했다. 점심으로 싸간 아이용 김밥과 유부초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고 오후에는 벽천이 있는 곳에 가서 그냥 손 담그고 발 담그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을 좋아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계단 내려오기, 동전 넣고 타는 놀이기구 타기 등을 하면서 2~3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고단하긴 했는지 집에 와서는 낮잠을 3시간씩이나 잤고, 밤에도 10시 즈음 깊은 잠에 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8개월, 그래도 무사히 잘 넘겼던 것 같다.
단 하루도 예외 없이, 실수를 하더라도 혼내지 않고 격려해 가면서 대소변 훈련을 시켰더니, 생후 23개월 차 드디어 낮동안의 대소변 가리기가 완성되었다. 완전히 기저귀로부터 해방된 것은 세돌 직전(35개월)이었는데, 그 간의 과정들을 정리한 대소변 훈련 일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생후 18개월 : 대소변 훈련 시작. 대소변이 마려우면 알리기. 소변은 화장실 변기에서 서서 누기. 대변은 화장실 앞 아기용 변기 앞에서 싸기 성공
2. 생후 20개월 : 낮동안 기저귀를 차고 있지 않을 때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소변 누기 가능.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는 소변 마렵다고 알리기 성공. 대변은 아직 적응 중
3. 생후 23개월 : 아기용 변기에서 대변 누기 성공. 낮동안 대소변 가리기에 완벽하게 성공해서 낮엔 기저귀로부터 해방. 낮에 팬티 입기 시작
4. 생후 27개월 : 아기용 변기와 작별함. 대변도 어른용 변기에 아기용 변기 커버를 끼워 누기 시작함. 잘 때는 대소변 가리기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기저귀를 채워 재웠지만, 소변이 마려우면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서 싸기 시작
5. 생후 35개월 : 학위논문 제출로 너무 바빠서 밤중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제대로 못 시킴. 그런데 갑자기 밤에 기저귀 차는 게 싫다고 함. 한두 번 정도 이불에 지도를 그린 후, 낮에도 밤에도 볼일은 화장실에 가서 보기 시작. 이후 밤중 화장실 사용(소변)도 사실상 거의 사라짐. 대소변 가리기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