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9개월 육아 & 놀이(교육)
생후 19개월, 몸무게는 겨우 0.1kg 정도 늘었을 뿐이고, 키는 계속 쑥쑥 자랐다. 몸무게가 늘지 않자 18개월 무렵부터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날은 덥고 선풍기 바람은 계속되고, 물놀이도 좋아하다 보니 기침감기, 기관지염이 와서 또 한동안 고생을 했다.
어릴 때(생후 7개월 무렵) 혹시 사시인가 싶어 걱정을 했던 적이 있다. 소아과에서는 아이 눈동자가 커서 그럴 거라고 했고, 돌 무렵까지도 가성내사시인 것 같다고 좀 더 크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아이를 본 지인분들이 아무래도 아이 눈이 안쪽으로 몰린 것 같다고 안과 진료를 제대로 받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좀 더 크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다가 여러 사람들이 그러니까 괜스레 걱정이 되어서 사시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아이를 꾸준히 봐주시던 소아과선생님께서 사시는 아닌 것 같지만, 걱정되면 일반 안과를 가도 알 수 있다면서 제일 편하고 가까운 곳을 찾아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경상병원에 있는 안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아이가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울기 시작해서 진료를 하는 순간 광란(?)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이라 나도 당황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너무 젊은 분이셔서 그런 건지, 소아과 전공의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전혀 아이를 다룰 줄 모르시는 것 같았다. 버둥거리고, 선생님을 밀어내고, 옷을 잡아 뜯고, 난리도 아니었다. 눈을 봐야 하는데 볼 수 없으니, 밖에서 좀 쉬었다가 아이가 안정되면 다시 들어오라고 해서 진료실 밖으로 쫓겨났다. 진료실 밖에 나와서는 간호사 선생님이 주시는 껌도 받고, 안약 통도 가지고 잘 놀았는데, 의사 선생님만 보면 대성통곡을 해 진료가 정말 너어무 힘들었다. 어쨌든, 어찌어찌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날 의사 소견은 "사시 여부를 당장 판단해야 할 정도로 심한 건 아니니 일단 두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아닐 확률이 더 커 보이니 3살이 지나서 다시 검사받아보는 게 좋겠다."였다. 확실히 알고 싶어서 간 건데, 이도 저도 아니라는 결론이다 보니 좀 허무했다.
그런데, 이 결과는 20년 전이지 않은가?
이제 다 컸으니 하는 말인데, 울 아들의 경우는 그 당시 코가 낮고 눈동자가 좀 커서 일반인이 보기엔 사시로 보이는 것이었고, 전문가들은 이를 가성내사시로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혹시 검사결과 괜찮다고 한다면 안심해도 될 듯하다. 울 아들도 자라면서 점점 코가 높아지더니, 눈동자가 안으로 몰려 보이는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달 잠시 잠잠하던 "내가 할 거야(?) 병"은 외할머니의 집안일이 타깃이 되어 다시 시작되었다. 매일 같이 청소와 빨래, 심지어는 설거지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힘은 또 어찌나 센 지, 그 무거운 진공청소기를 들고 참 열심히도 청소를 했다. 그리고, 이 "내가 할 거야 병(?)"은 19개월 무렵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이젠 키도 좀 커져서 뒤꿈치를 들면 방문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되니 방문 여는 것도 내가 하겠다, 방에 불 켜는 스위치도 내가 누르겠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도 내가 하겠다 등등 밥 혼자 먹겠다, 세수 혼자 하겠다, 이 혼자 닦겠다만 빼고 다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시기,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은 하기 싫어하고, 굳이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하겠다고 했는데, 가능하면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되, 위험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경우엔 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고집을 피우기도 했고 울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닌 건 아닌 거지.
아이의 19개월엔 나도 논문 작성 등의 일정으로 많이 바빴다. 물론 다른 달에 비해 여행을 좀 다녀와서 많은 추억을 쌓긴 했지만, 일상에서는 시간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바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엔 항상 오늘은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해볼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 고민 끝에 하루는 비눗방울을 사서 돌아온 적이 있다. 아이에게 비눗방울을 처음 보여줬는데, 막대에서 비눗방울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엄청 신기해하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겁이 좀 나는 지 만지지는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비눗방울 구경만 했지만, 나는 아이가 비눗방울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번 해볼래? 후 하고 불면 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비눗방울을 직접 해 보겠냐고 권했더니 약간 망설이더니, 나와 비슷한 입모양을 만들어 후 하고 불었다. 당연히 작은 비눗방울이 만들어졌고, 이후 1시간 넘게 욕실에 앉아 비눗방울을 만들며 놀았다.
아이가 비눗방울을 불며 노는 모습을 곁에서 한참 지켜보다가, 그 당시 사줬던 나팔 장난감을 가져다 불어 보게 했다. 사실, 며칠 전까지 나팔 부는 방법을 가르쳐보려고 했지만, 잘 안 돼서 나팔 소리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비눗방울 불듯이 하면 된다고 알려줬더니, 드디어 나팔 소리를 냈다. 본인도 신기했는지 비눗방울과 나팔을 동시에 불며 열심히 놀았고, 나중엔 아빠한테 전화해 달라더니 다짜고짜 나팔 소릴 들려주며 자랑을 했다.
돌이 지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빠 육아. 14개월엔 그저 아이와 손을 잡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같이 걸어 다니거나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거나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의 역할도 점점 커져갔다. 두 부자가 마주 보고 앉아 책을 읽고 있거나, 아이의 흥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엔 "까르르까르르 " 웃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 밖에, 이 시기에 가장 재미있어했던 놀이는 공구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것 같아서 사줬는데, 혼자서 나사를 끼우고, 드릴을 돌리며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소꿉놀이도 점점 정교해졌다.
아이가 성장을 하면 할수록 놀이 방식도 정말 다양해졌고, 놀이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다른 놀이로 이어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엄마, 바다"
아이가 창 밖의 풍경을 가리키며 "바다"라는 단어를 처음 내뱉었다.
"우와, 대단해. 바다라는 말을 어떻게 알았지?"
생후 19개월, 무지 바쁜 와중에 4박 5일의 긴 여행 1곳과 당일치기 여행 2곳(울산 대공원과 청도 운문사 계곡)을 다녀왔다.
4박 5일의 긴 여행은 울 신랑 연구실의 하계 MT였는데, 아이가 아직 어려서 참석할까 말까를 한참 망설이다가 아이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될까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따라나섰다. 물놀이를 대비한 옷가지부터, 간식거리, 밥, 반찬, 놀잇감 등등 어마무시한 아이 짐을 다 싣고 다녀왔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많이 낯설어했지만, 금세 적응해서 연구실 삼촌과 이모들에게 덥석덥석 안겨 잘 놀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 동생과도 잘 놀았던 것 같다. MT의 최종 목적지는 설악산이어서, 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아이가 지루할까 봐 바깥 구경을 함께 하며 간판도 읽어주고, 풍경 설명도 해가며 한참 갔다. 그런데, 바다 풍경이 보이자 갑자기 "바다"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 시기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는 단어, 아는 말이 있으면 불쑥불쑥 입 밖으로 뱉어 빠르게 단어들을 습득해 나갔던 것 같다.
4박 5일간의 긴 일정 동안, 나는 아이의 식사시간, 잠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했고 일상에서 하던 습관(대소변 훈련 등)들을 그대로 유지했다. 아이 아빠도 MT 일정 안에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길다면 긴 일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수월했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여행을 했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겐 꽤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