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0개월 육아 & 놀이(교육)
20개월에 접어들면서 한동안 정체되었던 신체 발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단은 걱정했던 몸무게가 쭉 늘었다.
말도 정말 많이 늘어, 알게 된 두 글자 단어가 많아졌고, 하하, 호호 같은 의성어도 따라 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달라고도 했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징징거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짜증을 내거나 우는 날도 있었지만.
먹기 싫고 맛없는 건 손을 내저으며 싫다고 표현했고, 한여름이었음에도 입맛이 도는지 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스스로 찾아 먹기도 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을 스스로 캐치해서 흉내내기도 했고, 코끼리 코 흉내, 토끼 흉내도 냈다.
아무래도 17개월부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방귀대장 뿡뿡이"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이젠 칫솔로 이를 닦기 시작했고, 잘 하진 못했지만 혼자 양말 신기, 바지 입기 등을 시도해 보던 시기였다.
춤도 얼마나 잘 추는지.
그냥 막 추는 게 아니라 나름의 방식과 룰에 따라 창의적인 춤사위를 보였다. 어떨 때는 혼자 흥에 겨워 춤을 추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중심 잡기 놀이를 하기도 했고, 중심이 잘 안 잡아지면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이 시기, 주로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특히 세발자전거 타기, 자동차 타기 같은 걸 좋아했다. 쿵후나 무술 같은 포즈를 자주 취하면서 운동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다.
손재주가 20개월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해 가위질도 잘했다.
차 타는 걸 좋아하게 되어서 아침 출근 의식이 좀 더 길어졌다.
아침마다 아빠가 출근할 때 함께 따라나가서는 아빠 차를 타고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아빠가 출근하는 걸 허락(?) 해 주었다. 덕분에 울 신랑은 아침마다 10분 이상 빨리 출근을 해야 했다.
장난감 정리 정돈도 가끔은 스스로 하기도 했고, 밤잠 잘 때 수면 의식으로 하던 동화책 읽기와 옛날이야기 CD 듣기를 끝까지 듣지 않아도 스르륵 잠드는 날이 생겼다.
몸이 재바른 아이 치고는 높은 곳에 올라간다거나 하는 위험한 행동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20개월이 접어드니 약간 위험한 놀이를 즐기려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넘어지고 깨지는 사고가 많이 생겼다.
의자 모서리에 눈가를 찧었고, 의자에 걸려 복숭아뼈를 다쳤다. 의자에서 중심 이동을 잘못해 의자랑 같이 뒹굴어 손가락 2개에 피멍이 들었고 찰과상을 입었다.
그러고 보니, 의자가 잘못했네...
다치면 울고, 울면 잠이 드는 날이 가장 많았던 달이었던 것 같다.
생후 20개월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상상놀이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혼자 허공에 대고 손짓 발짓 하면서 세수하는 척을 했고, 집에 있는 인형들과 교감을 하는지 종알종알 이야길 하면서 노는 모습이 제법 많이 보였다.
틈틈이 하던 낙서는 이제 스케치북 하나면 충분했고, 이제 잘 사용하지 않는 포대기를 활용해 인형들을 업고 다니는 놀이를 했다.
글을 읽는 척하기도 했고, 숫자를 세는 척도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일단 "5"를 확실하게 알게 되어서 어딜 가도 "5"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숫자와 친해질 수 있도록 집에 있던 사물 인지 포스터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숫자 포스터를 벽에 붙여주었다.
슬슬 컴퓨터를 활용한 학습동화와 노래교실 프로그램을 즐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컴퓨터 사용이 잦다 보니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친해져서 컴퓨터를 이용한 유아용 프로그램을 찾아 하루에 30분 ~ 1시간 정도 보여줬다.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보는 것과는 조금 유형이 다른데, 옛날이야기를 2D 그림으로 구현해 놓은 동화 정도를 주로 봤다.
음악놀이도 시작했다.
돌 전에 이미 실로폰을 사줬었고, 나팔도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도구들은 모두 주방에서 사용하는 조리도구를 이용해 두들기고 박자를 맞추는 놀이를 주로 했었다. 그런데 아이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장난감 코너에서 "방귀대장 뿡뿡이 음악놀이 세트"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구들은 아이의 북소리에 맞춰 심벌즈를 치고, 탬버린을 흔들고, 마라카스를 흔들고, 나팔을 부는 작은 음악대가 되었다.
생후 20개월에 접어든 육아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이가 남들보다 영특해 보이는 건 내 아이이기 때문인 거다. 그리고 만약 그게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게 무슨...
그 당시 나는 고슴도치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였나 보다.
아마도 내 눈에 내 아이가 영리하게 보였고, 그런 생각으로 인해 내가 앞서갈까 봐 스스로 다짐을 했나 보다.
지금 보니, 좀 많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