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중학교 1학년 학기 초, 아이가 "과학고에 가겠다"라고 선언한 뒤, 저는 곧바로 인터넷에서 과학고 입시 정보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맞춤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가고 싶다고 말했던 학교를 특정해, 그 학교 홈페이지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카테고리를 열어봤고, 공개된 자료라면 과거든 최신이든 가리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매년 5~6월쯤 입학설명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정보를 찾았을 때는 이미 신청 기간이 지나가 있어서 결국 다음 해를 기약해야 했습니다.
* 과학고에 따라 설명회 대상이 중3 학생과 그 학부모로 제한되기도 하고, 신청희망자가 너무 많을 경우 온라인 설명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학교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저는 다음 해 이맘때쯤 있을 입학설명회의 대략적인 신청 날짜를 휴대폰에 입력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과학고에 가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괜히 미리 찾은 정보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뒤로 저는 1년 동안 집에서 공부하는 태도, 영재학급 수업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중2 영재교육원 시험에 합격하는 과정까지, 아이가 중학교 생활을 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아이 스스로 과학고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부터 챙겼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아이의 생각은 오히려 더 확고해졌습니다.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린 것이 아이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는지 과학고 입학에 대한 목표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해, 입학설명회에 가보기로 하고 바로 신청을 했습니다. 마침 아이 아빠도 그날 시간이 맞아, 함께 학교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 제 아이가 입학하던 당시에는 입학설명회가 해당 과학고 시청각실에서 단 1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2025년) 자료를 찾아보니, 교육지원청 별로 날짜와 시간을 나누어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훨씬 많은 학생들에게 입학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듯 보입니다.
당장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학년이 아니다 보니, 저희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를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 마음속에는 이미 과학고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은 듯 보였지만, 막상 학교를 직접 둘러보고 설명을 듣다 보면, 생각 정리가 더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지역의 과학고는 기존의 과학고가 영재학교로 전환하면서 새로 설립된 곳이라, 생긴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행사장 건물로 걸어 들어가는데, 학교가 참 깨끗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입학설명회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입학을 희망하는 누구나 신청 가능'이라는 문구만 보고 신청하긴 했지만 중학교 2학년이 가도 되는지 조금 망설였는데, 막상 가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들까지 참석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어 조금 머쓱해졌습니다.
설명회는 교장선생님의 인사말로 시작되었고, 이후에는 입학사정관 선생님이 주로 진행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대해 소개해 주셨고, 과학고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졸업 후에는 어떤 대학으로 진학하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로 입시 절차와 일정 등 실질적인 정보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입학사정관 선생님의 설명은 행사장 입구에서 나누어준 팸플릿에 대략적인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서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해와는 별개로 제 아이의 과학고 입학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설명회가 끝난 뒤에는 희망자에 한해 학교 투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1학년 과학고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구성된 질의응답 자리도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당장 입시가 급한 상황이 아니어서 학교 투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옆을 지나치다 보니, "과학고 들어오려면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하나요?" 같은 질문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를 들으며, '역시 과학고에 입학하려면 학군지 학원의 도움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학교 투어는 희망자만 참여하면 되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참석자가 빠짐없이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안내해 주시는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 이동하면 과학고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각 교실의 기능이 무엇인지, 어떤 장비들을 갖추고 있는지 등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저희는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들르는 곳마다 눈을 반짝이며 어찌나 꼼꼼하게 살펴보는지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졌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른인 저희가 보기에도 과학고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일반 교실뿐만 아니라, 최신 실험 장비가 가득한 과학실, 최첨단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 전교생 모두에게 제공되는 독서실 자리, 휴식을 위한 노래방, 2인 1실의 기숙사까지, 학교 시설 자체만으로도 이공계 분야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누구든 마음을 빼앗길만했습니다.
학교 투어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갈 때, 저희 가족은 거의 마지막으로 2층 계단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단참에 놓여 있는 자판기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겁니다.
한참을 돌아다녔으니 목이 마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그 자판기는 음료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판기였습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처음 본 데다, 그것이 학교 안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꼭 하나 먹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만, 자판기 안의 모든 제품이 '품절'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저희는 학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판기 속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기 위해서라도, 이 학교에 꼭 들어와야겠어요."
그날의 입학설명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과학고에 입학해야 할 이유를 확고히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이스크림 자판기(?)라는 신선한 동기는, 아이가 지칠 때마다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작은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과학고 입학 선언을 한 중1 때부터 과학고 입학을 위한 대략적인 장기 플랜(4화 참조)을 짜고 이를 실천해 왔던 아이는, 과학고 입학설명회를 다녀온 후, 한층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위해 과거의 모집요강을 찾아보며,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특히 신경 써야 하는지 등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과학고 입학의 승부는, 바로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 부분도 학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10화를 참조해 주세요.
[서른아홉 번째 고슴도치 시선] 아이가 다닌 중학교에는 'Wee 클래스'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위(Wee) 프로젝트는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연계하여 학생들의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통합 서비스망입니다. 전국 모든 학교에 설치된 것은 아니지만, 2024년 기준 학교 단위에 약 9,000개가량 개설되었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Wee 클래스는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 심리 상담, 학업 및 진로 고민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데, 아이가 다닌 중학교의 경우 전문 상담 선생님이 상주하면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제 아이는 누구보다 Wee 클래스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주로 진로 진학 상담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선생님과 상담한 결과를 저희에게 공유해주기도 하고, 저희와의 대화를 다시 선생님께 피드백하는 등 스스로 꿈을 찾기 위한 노력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기회를 잘 활용하면,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아이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에 가려면?!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