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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교육으로 얻은 것들

중등 편

by My Way

1학년 영재학급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 담당 선생님께서는 영재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시험을 한 번 쳐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특히 '과학고 입시'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영재 교육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좋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시험은 원한다고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별 재학생 수에 따라 추천 인원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시험 응시 자격을 얻으려면 학교 내부에서 별도의 선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영재학급 아이들 모두가 지원 의사를 밝힘에 따라 교내 선발 시험이 치러졌고, 제 아이는 선발된 6명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와 아이 아빠는 '영재 교육'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시험을 치르러 가던 그 주말, 나들이 가듯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장에 갔던 것 같습니다. 원서 접수 등 행정적인 절차는 학교에서 공동으로 진행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할 일은 개별적으로 시험만 치르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가 정확히 어떤 시험인지도 모른 채, 별다른 기대 없이 시험장에 도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시험장에 도착해 보니,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과 차가 뒤엉켜 있었고, 건물 밖에는 비장한 표정의 아이들과 아이들보다 더 긴장해 보이는 학부모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충분히 여유 있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고 심상치 않아서 서둘러 차에서 내려 고사장을 확인하고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희는, 아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OO이 덕분에 신기한 경험을 해본다, 그치?"

"그러게."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이가 시험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많은 학부모들이 마치 수능 시험장에서처럼 시험이 끝날 때까지 고사장 앞이나 주차된 차 안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낯선 풍경이 그저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희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학교에서 영재학급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시험 준비를 시켜 주셨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아이가 특별한 준비 없이 시험에 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나름 최선을 다했는지,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저녁 늦은 시간에 학교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OO이 어머니, OO이가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했습니다. 저희 학교 아이들 중 세 명이 합격했어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번에는 아이 아빠도 시험장의 긴장감과 열기를 직접 목격한 덕분인지, 아이의 영재교육원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아이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학교를 벗어나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영재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살던 지역의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은 두 곳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원하는 기관을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합격한 세 명 중 한 명은 다른 곳을 선택했고, 제 아이와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그나마 집과 더 가까운 기관을 골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에 있었습니다. 나름 가까운 곳을 선택한다고 했지만, 집에서 차로 30분은 가야 했기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는 늘 분주했습니다. 영재 수업이 끝나면 이미 평소 취침시간을 넘기기 때문에, 아이는 하교하자마자 숙제부터 했고, 그동안 저는 아이만을 위한 이른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아이가 저녁까지 먹고 나면 영재 수업이 있는 다른 중학교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곤 했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그 두 시간 동안, 저는 학교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 한 뒤 운동삼아 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돌았습니다. 날이 어두워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았고, 함께 합격한 같은 중학교 친구는 주로 아버지가 데려다주고 데려가셔서, 대화를 나눌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져서 밤이 깊어지면, 학교 전체가 캄캄한데 아이들이 수업 중인 교실만 환하게 빛이 났습니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웃음소리와 서로 대화하는 밝은 목소리가 고요한 운동장에 가볍게 울렸습니다.


제 아이는 영재 수업만 마치고 나오면 완전히 수다쟁이가 되곤 했습니다.


"친구들이 진짜 똑똑한 것 같아요."

"오늘 수업, 정말 재미있었어요."

"엄마, 오늘 OO이 만났어요. 수학반에 있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아이는 그날 수업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친구들이 똑똑해 얼마나 놀랐는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 초등학교 때 함께 과학 실험대회를 나갔던 애증(?)의 친구(2편 14화 참조)가 '수학반'에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제 아이는 '과학반'에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이는 영재교육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 뛰어나 보여 감탄하면서도, 그 친구들과 말이 잘 통하고 함께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수업은 어때?"

"수업은 선행이 되어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저만 모르는 용어나 개념이 있긴 해요."

"그럼 힘들지 않아?"

"근데 그건 제가 선행을 안 해서 그런 거니까, 지금부터 배우면 되죠. 저는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아이는 정말 영재교육원 수업을 즐기면서 다녔습니다. 수업 가는 날이면 "오늘은 또 뭘 배울까?" 하며 기대했고, 수업 중 자신만 모르는 개념이 나와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당연히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의 영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에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수업은 학교수업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정이었습니다. 다행히 평소에는 추가 과제가 거의 없어 시간 관리만 효율적으로 하면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졸업 과제는 팀 프로젝트이기도 해서, 학기 중 주말을 이용해 같은 조 친구와 과제를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CQvUw6aD_uqEtSWaMn7BVhKDgfE.jpg 졸업 과제로 '골드 버그 장치' 준비 중


아이가 영재교육원을 다니는 모습을 보며, 학교 영재학급 담당선생님께서 왜 영재 교육을 꾸준히 받으면 좋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비슷한 꿈을 가진 또래들을 만나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 자체가 이미 큰 자극이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위치와 실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재교육원에서 보낸 시간은 아이에게 꽤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을 지나며, 아이의 '과학고에 가겠다'는 다짐은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른여덟 번째 고슴도치 시선] 제 아이가 남자아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이에게서 친구 험담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엄마들로부터 들은 소문을 확인차 물어보아도, 아이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이에게서 친구들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더 자주 들었습니다. 특히 중1의 영재학급과 중2의 영재교육원 수업을 하던 시기에는, 제가 묻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신나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엄마, OO이라는 애는 이런 이런 개념까지 알고 있더라고요. 진짜 대단하죠?"

"엄마, OO이는 꿈이 카이스트 가는 거래요. 멋지죠?"

"엄마, OO이가 오늘 선생님이랑 과학상식 베틀해서 이겼어요. 걔는 아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부러워요."

제 아이는 친구들의 멋지고 뛰어난 모습을 보면, 정말 순수하게 '부럽다'라고 말했고, 그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심 없이 남을 인정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늘 신기했습니다.

"질투 나지 않아?"

"질투요? 아니요. 저도 걔네들처럼 하면 되죠."

제 아이는 질투를 하기보다는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고, 그것을 동기 삼아 '나도 더 노력해 보자'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아서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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