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2022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진로연계교육을 실시하여 '자유학기 프로그램 맛보기'를 진행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실제로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1학년 2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것이 지역 교육청의 방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학기제가 전면 도입된 지 채 2년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학부모들은 다소 불안해했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막 중학교에 적응했는데, 한 학기 동안 시험도 치르지 않고 진로 탐색 활동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된다는 점을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꿈과 끼를 찾고,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해 탐색하며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자유학기제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지, 정규 교과 수업이 줄고, 아이들의 학업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통로가 사라지자,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였습니다.
반면, 저는 1학년 2학기에 실시되는 자유학기제가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1학기가 아닌 2학기에 운영된 덕분에, 아이들이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바짝 긴장했던 학교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진로에 대해 한층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기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마음 놓고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자유학기제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와 달리 학교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성실히 운영했습니다. 바리스타 체험, 드론 체험 같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활동부터 진로와 관련된 특강까지, 아이들의 흥미와 참여도를 고려한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제 아이의 경우, 자유학기제가 시작되어도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험만 없을 뿐, 학교 수업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하교 후에는 공부방에서 숙제를 하고 복습을 하는 루틴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학기 공부와 시험을 치르며 나타난 다양한 이슈들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째, 공부 장소에 대한 이슈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저희 집에는 아이방과 공부방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집에서 공부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터디카페가 점차 확산되면서, 친구들이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에 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고, 아이도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오가는 시간 자체가 낭비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혼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면, 목표로 한 공부량을 채우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이야기했더니 아이도 이를 수긍했습니다.
둘째, 백색소음에 대한 이슈
사춘기 소년 특유의 허세인지, 아니면 유행 때문인지,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려는 시도를 한 적 있었습니다.
저는 이 또한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 공부 방식은 시험을 칠 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험 때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평소 공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차라리 완벽한 무음 상태보다는 백색 소음과 같은 주변 소음 속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각 과목별 공부 방법에 대한 이슈
아이는 여전히 현행에 머물러 있었고, 복습 위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1학기 시험을 치러보니, 주요 과목에서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이 보였습니다.
일단, 국어와 과학은 숙제와 복습 위주로 공부하다가 시험공부를 하면서 문제집을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국어와 기본 지식을 갖춘 과학은 아이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과목이었습니다.
수학 역시,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방식, 즉 교과서 방식 그대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평소에는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발생하였습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뒤, 저는 네 칸 공책을 사주었습니다. 각 칸마다 문제를 가지런히 풀면, 그 문제가 틀렸을 경우, 어느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 의도대로 문제를 풀지 않았습니다. 네 칸의 경계를 넘나들며 풀이과정을 썼고,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머릿속에 있어서 답이 틀렸다 하더라도 다시 검토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고쳐보려 애썼습니다. 서술형 문제가 많아지는 추세에, 이런 방식이면 감점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언어로서의 영어와 학습으로서의 영어(2편 15화 참조)'로 나누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는 당연히 학습으로서의 영어가 주가 되어야 했기에, 저는 영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장 정리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영단어 외우는 방법은 제가 해왔던 방법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저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말하며 단어 자체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눈으로만 보면서 단어보다는 문장을 통으로 외우고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 게으른 방식처럼 보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고, 오히려 더 나은 점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가르쳐 준 방법을 참고하되, 자신만의 공부법을 하나씩 만들어나갔지만, 그 과정에서 마찰(5화 참조)도 생겼습니다. 오죽하면, 아이 아빠가 공부방에 들어와 "둘이 그만 좀 싸우지*."라며 한소리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유학기제가 주는 여유 덕분에, 그 마찰 역시 서서히 조율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 싸웠다기 보다는 경상도 말투라 그렇게 들렸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자유학기제때 중점적으로 했던 것은 바로 '독서'였습니다.
학기 중에는 독서할 시간이 사실상 많이 부족했는데, 자유학기제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물론, 친구들을 따라 라이트 노벨(light novel)을 읽기도 했지만, 과학고 입시에 필요한 '독서'를 위해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전략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도 병행했습니다.
제 아이에게 있어, 자유학기제는 분명 기회였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을 체득하고, 공부법을 재정립하며, 과학고 입시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서른일곱 번째 고슴도치 시선] 중학교 때도 성적통지표를 받아보았습니다. 선생님에 따라 개별 의견을 남겨주지 않으신 경우도 있었지만, 중1, 중2 담임 선생님께서는 귀한 피드백을 남겨주셨습니다. 이번 고슴도치 시선은 중 1학년 담임선생님의 코멘트로 고슴도치 시선을 갈음하겠습니다.
OO이는 예의 바르고 의젓하여 동급생들보다 더욱 성숙한 면모를 지녔습니다. 또한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 믿음을 줍니다. 성적도 우수하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라고 많이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 영재교육으로 얻은 것들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