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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험과 달콤쌉싸름한 보상

중등 편

by My Way

중간고사 시기가 대략 언제쯤일지는 알고 있었지만, 오롯이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시험범위와 시험일정의 빠른 공지가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중간고사 일정이 나왔을 때는 내심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간고사를 두 번에 나누어 친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해 아이의 학교에서는 객관식 시험을 먼저 치르고, 약 일주일 뒤에 서술형 시험을 본 다음, 곧바로 수행평가와 기말고사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험이 다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 시험은 중학교 정규 과정에서 치르는 첫 시험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더욱이 이 시험 결과에 따라 사교육 정글 속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아이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고사 일정이 공지되자마자, 아이는 평소 공부 루틴을 잠시 접고, 시험공부 모드로 돌입했습니다. 우선은 객관식 시험을 목표로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전 과목을 전체적으로 가볍게 훑어보았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시험 범위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참고서와 문제집에 시험범위를 표시해 두고,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공부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진도가 나간 부분부터 매일 참고서를 확인한 뒤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으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다시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을 꼼꼼히 체크해 두었습니다.


둘째, 중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주요 과목들에 체크해 둔 부분을 다시 살펴보며, 문제 풀이 과정에서 틀린 부분을 점검했습니다. 또한 암기 과목 공부를 병행하면서 단기 기억에 머물지 않도록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노력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나눠주신 프린트물과 학습지를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시험문제를 출제하실 선생님의 의도와 출제경향을 가늠하며, 프린트물과 학습지에서 특히 강조하신 부분과 중요하다고 짚어주신 내용을 다시 복습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전날에는 빠뜨린 부분은 없는지 마지막 점검을 한 뒤, 컨디션 유지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공부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것 외에는 아이의 공부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념을 익히고 문제를 풀고, 답안을 확인하는 모든 과정을 아이 스스로 해냈습니다.

하지만 시험기간만큼은 달랐습니다. 시험공부 방법을 함께 점검하고,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강조하며, 아이가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고 틀린 문제를 같이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이와 자꾸 마찰이 생겼습니다.

이 바쁜 시험기간에, 아이는 문제집과 맞짱을 뜰 기세였습니다. 저는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빨리 넘어가길 바랐지만, 아이는 문제집 속 오류를 하나하나 찾아내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답지의 풀이과정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물고 늘어졌고, 오타라도 발견되면 그 문제집 전체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수학 문제를 풀면서는 "왜 이 개념을 써야 하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문제집도 그런 의문까지 답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아이의 의문을 끝까지 해소해 주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는 것이 정석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아이의 모든 질문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저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그냥 모범답안을 외우자."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이도 시험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일단 제 말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영 개운치 않은 표정과 답답한 마음으로 공부를 이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계획대로 시험공부를 착착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9 to 6(2편 12화 참조)를 유지했지만, 시험기간만큼은 그보다 훨씬 늦게까지 공부방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은 대견했지만, 저는 시험 결과를 받아보기 전까지, 이 '자기주도학습' 방식이 중학교에서도 통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시험 당일, 아이는 푹 잤는지 개운한 표정으로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이틀에 걸쳐 치러진 중간고사 객관식 시험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답을 확인할 수 있어, 정확한 등수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시험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 결과를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다행히 일단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습니다.


약 2~3주 동안 시험공부에 거의 올인했던 아이는, 객관식 시험이 끝나자 성적과 관계없이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고생했어, 아들. 시험 쳐보니 어때?"

"첫 시험 치고는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래서 말인데요, 엄마. 서술형 시험까지 다 치고 나면 1주일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쉴래요."


이때부터 아이는 중학교 생활 내내, 인터벌 운동처럼 시험을 위해 내달리다 시험이 끝나면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상 시스템을 지켜보는 저는, 아이에게는 달콤하지만, 제게는 가끔 묘하게 씁쓸한 달콤쌉싸름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험은 목표를 달성했으니 1주일간 쉬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열심히 하긴 했는데,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서 1주일간 쉬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망한 것 같아서 속상해요. 그래서 1주일간 쉬겠습니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 후의 보상은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지켜졌습니다. 시험을 망쳤더라도 1주일간의 보상은 지켜졌기 때문에, 가끔은 씁쓸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매 시험마다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시험 뒤 1주일간 쉬겠다고 하면, 몇 가지를 점검한 뒤 대부분 허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친 스케줄은 없는지 확인했고, 쉬는 동안에도 미루면 안 되는 숙제는 반드시 수행하도록 합의를 본 후 허용했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아이는 머리맡에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었고, 유튜브를 보며 깔깔거렸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방에 들어가 숙제만 잠시 하고 나와, 자신의 방에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다만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시험이 끝나도 다음 학원 일정 때문에, 아이와 같은 긴(?) 해방감을 누리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약속한 1주일 동안, 저는 아이가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1주일이 참 길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요.


하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과정이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가 숨 쉴 틈은 반드시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다음 목표를 향해 다시 힘차게 나아갈 힘이 모아진다고, 저는 믿었으니까요.




[서른다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후, 투 트랙으로 운영되던 시험은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각 과목별로 객관식과 서술형을 함께 치렀고, 3일에 걸쳐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중학교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면, 시험에 관련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특징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답안지를 매기는 시점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각 과목별로 답안이 바로 전달되어, 아이들은 자신의 성적을 즉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쉬는 시간에 답안을 확인하지 않고, 꼭 집에 와서 답안을 채점했습니다. 아마도 지나간 시험에 매달리기보다는, 앞으로 치를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다른 친구들의 성적에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는 아이가 집에 와서 이상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엄마, OO이는 시험만 치고 나면 우리 반에 와서 나한테 몇 개 틀렸는지 물어봐요." 그래서 저는 "넌 친구의 성적이 궁금하지 않아?"라고 물었고, 아이로부터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아이는 남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자기만족과 스스로의 목표, 성취에 더 집중하는 아이인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자기주도학습, 한번 해보지 뭐.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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