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제게 해준 말이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겨울방학엔, 반드시 중학교 공부, 특히 수학 선행을 해 놔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당시의 저는 그 조언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귀담아듣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무지(?)와 빈약한 정보력 덕분에, 제 아이는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한동안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하고, 집에 와서는 공부방에 들어가 숙제를 열심히 해 가는 정도의, 기본에 충실한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아이의 중학교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학기 초에 열리는 학부모 회의와 각종 연수에 빠짐없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 대부분이 이미 학원을 다니고 있고, 특히 과학고와 같은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먼 거리라도 '학군지'에 있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막연한 위기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는데, 아이가 "과학고에 가겠다"는 선언까지 했으니...
그날 이후, 제 머릿속에서는 '학군지 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학교 생활에 차츰 적응해 나가는 듯 보였지만, 제 마음은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심정을 달래고자 무작정 학교 근처 서점에 들러보았습니다. 시내에 있는 큰 서점보다는 아무래도 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이라면 학교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 예상대로 그곳에는 근처 중고등학교 전용 학습지 코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집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뭘 사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문제집 코너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사장님께서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네셨습니다.
"중 1? 고 1?"
"중 1이요. 근데, 1학년 엄마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뭘 사야 할지 모르시는 것 같길래. 하하하."
서점 사장님께서는 아이 학교 이름을 듣더니, 학부모와 아이들이 주로 어떤 문제집을 선호하는지 각 과목별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집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어떤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면 좋을지, 대략적인 파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하진 않았습니다. 문제집 취향이 따로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공부 주체는 아이이니, 일단 아이와 함께 교과서를 확인하고 나서 문제집 종류를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오후,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가 있다며 공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들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학교 공부는 어때?"
"할 만해요."
"친구들은 다들 학원 다니나 보더라. 특히 과학고 준비하는 친구들은 학군지 쪽 학원에 간다던데, 너도 학원 다녀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학교 수업 중에 어려운 건 없어요."
"그래? 그럼 일단 중간고사 쳐보고, 그때 다시 생각해 볼까?"
"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다가 집에서 혼자 공부해 보기로 했습니다. 대신, 첫 시험이 끝난 뒤 결과를 보고 나서 다시 공부 방법을 의논해 보기로 했죠.
사실, 저는 이 지점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아이가 '학원의 존재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학원은 '배우는 곳'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학교와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죠. 저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배우며 보충하는 곳이 학원이고, 그렇게 배운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이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아직 어렵지 않으니, 굳이 학원에 가서 같은 내용을 반복해 들을 필요는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선행이 아닌 현행 학습을 주로 하는 아이였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원 = 보충 학습 공간'이라는 생각이, 결국 아이가 과학고에 진학해서도 사교육을 받지 않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앞으로 다가올 첫 시험, 중간고사를 대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과학고 입학을 위한 장기 플랜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문제집 고르기
아이와 함께 학교 앞 서점에 들러 과목별로 필요한 참고서와 문제집을 골랐습니다. 서점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문제집과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추천받았다는 문제집을 서로 비교해 보며, 아이 성향에 맞는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은 개념 정리가 잘 된 참고서를 기본으로 구비하고, 문제집은 유형별 문제와 심화 문제가 적절히 섞인 것으로 골랐습니다. 나머지 과목은 개념 정리가 포함된 문제집만 선택했습니다.
둘째, 평소 공부 루틴 정하기
중학교 입학 직전 겨울방학에, 남들 다 한다는(?) 중학교 선행을 하지 못한 탓에, 아이는 여전히 현행 위주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배 학부모들이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게 그때서야 살짝 후회가 됐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했습니다.
본격적인 중등 과정 수업이 시작되자, 효율적인 시간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습관들인 다이어리 쓰기를 활용해, 학습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갔습니다. 학습 계획표는 보통 1주일 정도, 최대 한 달 앞서, 어떤 공부를 할 건지 미리 계획을 세우는 형태였습니다. 학교 숙제나 수행평가 과제뿐만 아니라 그 외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할 건지 등을 적어놓음으로써 해야 할 일을 미리 점검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 계획대로 아이는 매일 방과 후엔 공부방에서 일단 숙제부터 하고, 남는 시간에는 개념서와 문제집을 병행한 '복습' 위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수학' 공부에 집중하되, 필요시 영어와 과학 등의 주요 과목 위주로 개념서를 챙겨보았습니다.
셋째, 장기 계획 세우기
"과학고를 가보겠다"라고 호언장담(?)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담임선생님께 이것저것 여쭤보고 와서는 개략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첫 번째는 수학과 과학은 무조건 A 받기, 두 번째는 최소한 상위 3% 안에 들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준들이 과학고 입학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과학고에 가려는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현실적으로 염두에 두는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시험 일정이 나오기 전까지, 크게 서두르지 않고, 일상을 살았습니다. 정해놓은 루틴대로 꾸준히 숙제와 복습을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첫 시험, 중간고사 일정이 공지되었습니다.
[서른네 번째 고슴도치 시선] 아이들 중에는 친구와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아이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가 태권도를 다닌다고 하니 자신도 다니고 싶어 했고,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과학 선생님이 좋아서 과학 실험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처음 시작은 그럴지언정,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곤 했습니다. 친구 따라 태권도를 시작했지만, 그 친구가 그만두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검은띠를 따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한 후에야 태권도를 그만두었습니다. 중학교에서의 과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과학 선생님을 따라 과학 실험 방과 후 수업에 참여했지만, 점차 선생님의 존재와 상관없이 스스로 과학고를 목표로 삼고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제 아이는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힘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첫 시험과 달콤쌉싸름한 보상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