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우리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길이 최선이야."
"하지만, 대장. 만일 대장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린 어떻게 해요?"
"어차피, 내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다들 알잖아? 내가 알려준 대로 하면 돼.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A2는 출정 준비를 하며, b1에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매뉴얼을 읊어주었다. 이 매뉴얼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
b1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녀석들과 달리 몸이 재바르고 총명했다. 그래서, A2는 일찌감치 그를 다음 세대 리더로 점찍어 놓고 미리부터 훈련을 시켜왔다. b1은 A2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꽤 믿음직스러운 아이로 잘 자랐다.
그리고 이제 그때가 되었다.
이 종족에게 있어 세대교체는 여타 다른 종족들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타 종족에게는 그 기간이 짧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길고 긴 역사였다. 만약 제대로 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종족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 중 최고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의 선조들은 애써왔다.
그런데, 이젠 세대교체 외에도 점점 황폐해지고 있는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임무가 더해졌다. 때맞춰 차원의 문이 완성되었지만, 새로운 곳을 찾고 정착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벌써 몇 세대째 고군분투 중이었다.
특히 이번에 출정하려는 곳은, 단 한 번도 정복에 성공한 적 없는 초고난이도 지역이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그들의 출정을 이렇게까지나 진심으로 방해하진 않는데, 이곳만큼은 마치 씨를 말리려는 듯 적극적이어서, 그들에 대한 현상금까지 걸어둔 상태였다. 최근에는 최신 무기까지 들여오며 위험도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A2와 그의 대원들이 이곳을 뚫으려는 이유는, 바로 다음 세대가 살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청정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차원의 문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모두를 데리고 이동하기에도 용이했다. 그러니, 이곳만 확보된다면, 먹을 걱정, 숨 쉴 걱정이 없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몇 세대에 걸쳐 이곳을 공략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다.
드디어 차원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 울림이 홀 안 가득 퍼져나갔다.
오늘 출정을 나갈 정예요원들이 속속 준비를 마치고 모였다. 모두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서인지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들의 가족들도 이 출정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모두 숨죽여 울고 있었다.
"H7, 적진에 신무기가 설치되었다고 하니 조심히 정찰하게. F5, 자네는 H7의 정찰이 시작되면, 꼭 내 뒤에 바짝 붙어 움직여야 해. 알지? C1, 자네는 우리가 나갈 때, 적의 시선을 교란시켜 주게. 그리고 D3는..."
"대장, 벌써 열 번도 넘게 말씀하셨잖아요. 모두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A2는 대원들을 일일이 쳐다보며 눈을 맞췄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그 반짝이는 눈빛에 안심이 되면서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대장,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차원의 문이 모두 열리자, 이글거리는 빛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타올랐고, 양쪽으로 오가는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자, 그럼. 출동."
A2의 말에, 정찰을 맡은 H7이 먼저 차원의 문을 넘었다. 뒤이어 다른 요원들도 이미 짜놓은 계획대로 차원의 문을 통과했다.
"아놔, 이것들이..."
계획대로 C1이 적의 눈앞을 교란시키자, 적의 방어와 공격이 심해졌다.
"대장, 지금이에요."
C1이 소리치며 적에서 멀어졌다 재공격을 시도하는 찰나, "퍽" 하는 소리와 함께 C1이 나가떨어졌다.
적의 공격 한방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아~."
차원의 문너머에서, 이 전쟁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종족들의 비명과 탄식소리가 A2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A2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 정도 희생은 각오했다.
"대장, 여기 신무기가 어마어마... 아악"
따따따 딱.
신무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신무기 정찰을 나간 H7도 전기의 힘으로 빨아들이고 처리하는 장치에 당했다. 뒤이어 정찰팀 전체가 순식간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A2는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흔들렸다. 이곳은 절대, 뚫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 정신 차려요. 이러다가 다 죽어요."
A2 뒤를 바짝 쫓아오던 최정예병 F5가 소리쳤다.
'그래, 내가 실패하더라도, F5가 있어.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죽음을 각오하고 나니, A2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들이 이곳에 종족 전체를 데리고 와 정착하려면 넓진 않아도 깊고 어두운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적의 공격을 피하고, 신 무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그 장소를 찾는다는 건 정말 쉽지가 않았다.
"대장, 저기 봐요. 지난번 정찰대가 찾았다는 곳이 저기인 것 같아요."
벌써 수십, 아니 수백 번의 정찰로 이 지역의 히든 포인트를 발견했었다. 다만, 정찰대 모두가 거기에 도착하기 전에 죽거나 도착했다 하더라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 포인트가 지금 A2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너무 기쁜 나머지 A2는 전방주시를 게을리한 채 히든 포인트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더니 어둡고 큰 그림자가 A2 위를 덮쳤다.
대장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대원들이 겁을 먹고 대열을 이탈해 흩어졌다. F5 역시 당황해 방향을 틀다, 적이 설치해 놓은 신무기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갔고, 알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갔다.
따따 딱.
이번에도 이 지역의 탈환은 실패로 끝났다.
차원의 문은 서서히 닫혀갔고, 남아서 종족을 지키고 있던 b1은 눈물을 훔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친... 오늘 뭔 날이야? 왜 이렇게 많아?"
따따따 딱.
"근데, 저거 진짜 잘 샀지 않아? 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긴 해도, 덕분에 좀 살 것 같아."
새로 들여놓은 전기 포충기의 성능을 직접 경험한 나는, 수북이 쌓인 '만원이'의 시체들을 처리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상, 저희 집 '만원이'의 시점이었습니다.
'만원이'가 누구냐고요?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