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3)
돌아보면, 아이의 중학교 3년 학교생활은 최종 목표인 과학고 입학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학급과 방과 후 과학 실험 수업을 통해 과학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를 일찍(?)부터 접한 아이는 과학고를 가겠다는 꿈과 목표를 설정한 후, 자신만의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학고가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지, 들어가고 나서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는 모른 채, 처음에는 그저 영재학급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이 "과학고"를 꿈꾸니까 덩달아 과학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물론, 과학과목에 대한 자신감과 과학에 대한 동경도 과학고를 꿈꾸는 데 한몫했을 것 같기는 하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시작된 꿈이었지만, 아이의 "과학고 입학"이라는 꿈은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자기주도학습을 서서히 체득하면서 자신도 충분히 과학고를 지원해 볼 만한 자격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반면, 우리는 아이가 조금 독특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남들보다 과학을 더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고가 아닌 다른 고등학교, 심지어 자사고 입학까지도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과학고를 가고 싶다."라고 했을 때 솔직히 좀 많이 당황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행해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이가 정말 과학고를 가고 싶은 거라면,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정보력이 약한 엄마였지만, 아이가 꾸는 꿈에 무언가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과학고"는 너무 생소한 단어라,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무작정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참여해 정보를 모았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과학고 입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중1 중간고사 이후 형성된 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로부터 "과학고"에 관한 정보를 얻어보고자 했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과학고를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작 "과학고" 한정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영재학급에서 함께 공부하고,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도 같이 다니던 친구 엄마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가 우리에게 과학고 입학 선언을 한 이후, 학교에서도 아이들 사이에서 "과학고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들 명단이 나돌았던 것 같다. 하루는 아이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가 한통 왔었다.
"OO이 엄마시죠? 저는 △△이 엄만데요, OO이도 과학고 희망하는 것 맞죠?"
"네."
"과학고를 희망하는 학생들 엄마끼리 모여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을 좀 다지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혹시 모임에 참석 가능하실까요?"
A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이 엄마 주최로 모이게 된 '과학고 희망 학생 소모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과학고등학교 정보가 전무하던 나에게는 아이들 정보, 학교 입시 정보, 학원 정보 등을 들을 수 있는 나름 유용한 모임이었다.
다만, 그 모임에만 갔다 오면, 과학고 입학을 위해 여러 유명 학원들을 다니고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방법이 정말 최선인건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이 서서히 자리 잡아가던 울아들은, 자신의 플랜대로 친구들이 수성구 어느 학원을 다니든가 말든가, 선행을 어디까지 했든가 말든가, 고등 수학을 몇 바퀴 돌렸든가 말든가, 전혀 휘둘리지 않고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다.
참으로, 단단한 아이였다.
친구 엄마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 외, 내가 아이를 위해 했던 두 번째 일은 인터넷을 통해 과학고에 대한 입시 정보를 찾아본 것이었다.
생각보다 정보가 많지 않았지만, 과학고에 대한 지식 자체가 제로 베이스인 상황인지라 그 자료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던 것 같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때 당시 나의 인터넷 검색 실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어떤 키워드를 쳐야 정확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료를 찾다 보니, 학교 홈페이지나 관련 뉴스, 나무위키나 지식백과 정도에 한정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아이가 카이스트에 입학하고 나서야, 이공계 관련 카페들이 있고, 그 카페에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과학고등학교의 정보가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부족한 검색 실력으로 찾은 자료라 자료의 양이 많진 않았지만, 그 자료들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1) 그 당시 대구시에는 과학고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가 2곳 있었다. 처음에는 과학고가 하나였는데, 2011년을 기점으로 분리되어 대구과학고등학교와 대구일과학고등학교 두 곳이 되었단다. 하지만, 두 과학고는 이름만 같을 뿐 성격이 다른 학교들이었다.
2)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운영되는 영재학교였고, 대구일과학고등학교(과학고)는 교육청에서 관리하는 공립학교였다.
3)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는 영재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중3이 아니더라도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대구일과학고등학교(과학고)는 다른 고등학교와 똑같이 중3 과정을 이수해야 지원할 수 있었다.
4)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는 법적으로 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3년을 다녀야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했다고 인정받아 대학입시에 도전할 수 있지만*, 대구일과학고등학교는 조기졸업과 조기진학의 기회가 있어서 고2 때 대학 입시를 치를 수 있었다(*2024년 현재, 카이스트처럼 영재고생의 조기졸업을 인정하는 입시 시스템도 있다.).
5)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는 전국단위 모집이었고, 대구일과학고등학교(과학고)는 기본적으로 대구시 소재 중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지원하는 학교였다.
6)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고)는 4월부터 입시가 시작되지만, 대구일과학고등학교(과학고)는 8월부터 입시가 시작되었다. 일반계 고등학교보다는 먼저 입시가 치러져 "전기 고등학교"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울 아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는 어딘건데?"
처음 접하는 정보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는데, 아이 아빠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는 "영재고"가 아니라 "과학고"였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고, 아이로부터 본인이 가고 싶은 학교는 "과학고"라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대구일과학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카테고리를 열어봤고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은 과거, 최신 가리지 않고 전부 뒤졌는데, 그러다가 매년 5월쯤 입시설명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학을 희망하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설명회라 중1 학생과 부모님도 신청 가능했다. 나는 달력에 입시 설명회 신청하는 날과 입시 설명회 날을 체크해 두고, 아이의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과학고를 가고 싶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입시 설명회 전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데, 괜히 미리 찾은 정보 때문에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의 생각이 확고한지 여부부터 챙겼다.
대구일과학고등학교의 입시설명회가 있던 날, 마침 아이 아빠도 시간이 나서 함께 학교에 방문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심지어 초등학생 꼬마 아이들까지 입시 설명회를 들으러 온 경우도 있었다.
그날의 입시 설명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이에게 있어서는 과학고를 입학해야 할 이유를 확고히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처음에는 입시 안내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 같았지만, 클라이맥스는 입시설명회가 끝난 후 계획되어 있는 학교 투어였다. 입시 설명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희망자에 한해(거의 대부분이 희망했다.) 학교 투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지는지, 어떤 것을 공부하는지, 어떤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반할만했다.
울 아들은 학교 투어를 꽤 꼼꼼하게 했고, 결국에는 거의 꼴찌로 학교를 나서게 되었다. 학교를 나서기 전, 아이가 들른 마지막 목적지는 복도에 설치된 아이스크림 자판기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처음 보기도 했고, 또 학교 안에 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꼭 하나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품절"이어서 맛을 보지는 못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기 위해서라도 이 학교에 꼭 들어와야겠어요.”
이듬해, 중2 때도 입시설명회를 왔었는데, 역시나 그때도 아이스크림 자판기 앞에서 좌절(?)을 경험했다.
'혹시, 아이스크림 자판기는 장식용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아이가 과학고에 입학하고서 보니,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자판기였고, 공교롭게도 입시설명회 날에만 "품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일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이스크림 자판기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겠어요."
'만약, 입시 설명회 날 자판기 속 아이스크림을 맛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아이스크림 자판기 이야기는 아이의 농담이었겠지만, 행여 그렇다 하더라도 이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를 만들고 다짐하는 건 좋은 징조라 생각한다.
아이 주변에 과학고를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가 과학고를 보내고 싶어 하는 아이였고, 또 다른 아이는 본인이 가고 싶긴 하지만, 그 이유가 엄마의 자랑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반면, 울 아들은 우리의 의지나 의사와 무관하게 본인이 너무 가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첫 번째 아이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영재교육원을 다니긴 했지만, 항상 본인보다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주눅이 들었고, 결국에는 과학고 시험에 도전도 못해보고 중도포기했다.
두 번째 아이는 엄마의 자랑이 되고 싶어서 하교 후부터 새벽까지 과학고 맞춤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학원에서 케어받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 1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울 아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본인을 위해서,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과학고 내 설치되어 있는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영재교육원 아이들과도 비등한 실력으로 경쟁해 결국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두 친구가 어떤 이유로 과학고 입시를 포기하고, 실패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중학교 성적이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과 불합격으로 갈린 것은, '목표는 같아도 동기가 달라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왜냐하면 과학고 입학 후 보니, 아이 스스로 과학고에 입학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아이들, 과학고에 진심이었던 아이들만이 힘들고 어려운 과학고 생활을 잘 견뎌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OO이는 과학을 좋아하니까 과학고를 가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과학고를 가겠다고 한 이상,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 쪽으로 방향을 틀어주고 아이가 가는 길을 뒤따라가면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과학고"에 입학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꿀 때, 아이의 꿈이 구체적인 목표가 될 수 있도록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방문해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입시설명회에 일찍 참여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과학고를 졸업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