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2)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아이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계를 확실히 한 건 아니었지만, 자기주도학습을 준비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던 "영재반"에 들어간 것이었다.
"엄마, 학교에서 영재학급을 운영 중인데,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요.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영재학급?"
"네. 방과 후에 수업 듣는 건데, 시험 쳐서 선발한데요."
'이미 영재라며... 영재 수업은 영재가 되고 싶은 애들이 듣는 수업이라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이의 요구대로 시험을 치겠다는 부모 동의 안내장에 사인을 해 주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학급은 1학년 대상 20명이 정원인데, 그해 22명이 지원했고, 며칠 뒤 영재학급에 선발되었다며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아이 아빠는 겨우 2명 떨어진 경쟁률에 무슨 의미가 있냐며 아이의 기를 팍(?) 죽였지만, 아이는 이미 아빠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영재학급 수업은 아이에게 꽤 많은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1주일에 두 번 있는 영재학급 수업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친구들이 방과 후 학원을 다닐 때, 울 아들은 학교에서 개설된 과학 방과 후 수업과 영재학급에 집중했다. 특히 영재반 선생님 중 한 분이자 과학 방과 후 수업을 맡아주셨던 과학선생님과 친해져, 방과 후 수업이나 영재학급 수업을 마친 이후에도 선생님과 함께 실험을 하느라 귀가가 늦어지기도 했다.
과학 선생님과 별도로 진행했던 실험은 보통 선생님의 실험을 도와드리는 보조 역할이었지만, 간혹 아이가 실험 계획을 세우고 검토받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학원을 가지 않는 덕분에 과학 선생님의 실험을 도울 수 있었고, 과학 선생님과 교류하면서 아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진로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변화는 아이에게 꿈과 목표가 생긴 것이다.
과학 선생님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영재학급 수업의 영향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과학고"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과학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과학고?"
사실, 아이의 선언에 나는 좀 놀랐다. 아이의 행동들이 근자감인지, 아님 진짜 실력인지 좀 헷갈릴 때도 있긴 했지만("제07화" 참조) 그래도 "과학고"에 갈 정도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열심히 한번 해봐."
울 신랑은 아이가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응원의 말 한마디를 남기고 끝냈지만, 나는 아이가 과학고를 정말 가고 싶은 거라면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지가 궁금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중학교 생활 3년 내내 과학고 입학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고 입시를 위한 모든 것을 학교 선생님들과 의논하며 준비해 나갔는데, 운 좋게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들이 모두 수학, 과학 선생님들이셔서 아이가 과학고의 꿈을 꾸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세 번째 변화는 아이가 영재교육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재교육은 영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듣는 거 아니냐."라고 하던 다소 건방졌던(?) 소년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교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조언, "영재교육을 계속 받는 게 좋아."라는 말씀을 잘 따랐다.
1년 동안 받았던 학교 영재학급 수업이 끝나자, 학교 측에서는 영재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중2과정 영재교육원에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우리도, 아이가 도전해 보겠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시험을 치러 갔다.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시험 당일, 아침 일찍 시험장소에 도착해 보니 정말 많은 아이들이 영재교육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다들 어찌나 비장한 표정들인지...
울아들의 경우, 영재교육원 원서를 내놓고도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길래, 우리는 그저 경험 삼아 한번 쳐보는 시험이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그곳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고사장 주변의 비장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우리는 '울 아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도 하는구먼.'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근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 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OO이가 A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했어요. 축하드립니다."
"대박"
사실, 결과 발표날을 얼핏 보기는 했는데, 정말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깜빡 잊고 있었다.
영재학급 담당 선생님께서 합격 확인 전화를 주시면서, 영재학급 친구들 중 울아들 포함 3명이 A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셨다.
그렇게 울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벗어나 다른 학교 영재반 아이들과 어울려 수업을 듣게 되었다.
1주일에 한번,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집에서 꽤나 먼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올 때마다, 그날 배운 수업이 신기했다든지, 친구들의 영재성과 천재성이 놀랍다든지, 그리고 초등학교 때 함께 실험대회를 나갔던 애증(?)의 친구("제07화" 참조)가 "수학반"에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내게 해줬다.
내가 느끼기에 울 아들은 영재교육원 친구들이 너무 대단해서, 그리고 자신과도 말이 잘 통해서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수업은? 수업은 어때?"
"사실, 수업은 선행이 되어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저만 모르는 용어나 개념이 있긴 해요. 근데, 제가 모르는 건 선행을 안 해서 그런 거라 지금부터 배워 나가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역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아이는 정말 영재교육원 수업을 즐기면서 다녔다. 친구들의 영재성과 천재성에 주눅 들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했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또 한 번의 영재교육원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에서도 자체 시험을 쳐 일부 진급할 학생들을 선발했지만 진급하는 학생 수가 많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2학년때처럼 공개 시험을 준비했다.
1학년 말에 친 영재시험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아는 것도 없어서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두었는데, 한번 더 치게 되었으니, 이번엔 뭔가를 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영재교육원 시험 관련 자료들을 모아봤었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들은 대부분 창의적인 문제보다는 선행이 되어야 풀 수 있는 수학, 과학 문제들이 많아서 마땅한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이변이 생겼다.
그 당시, 우리가 속한 관할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던 영재교육원은 두 곳(편의상 a, b)이었는데, 그 해 교육원 간 수준 차이가 나서, 아이가 다닌 a 영재교육원에서는 단 2명, 과학반 1명, 수학반 1명만 진급을 하게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b 영재교육원에서 진급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 과학반 진급자가 우리 아들이었고, 수학반 진급자가 초등학교 때 같이 실험대회를 나갔던 그 애증(?)의 친구("제07화" 참조)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울 아들도 본인이 진급할 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진급자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있다는 것에 좀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덕분에 영재교육원 시험 준비에 대한 고민을 한시름 놓게 되었다.
중3 때의 영재교육은 아이에게 더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각 교육지원청 중2 과정을 거쳐 교육청 산하 영재교육원에 선발된 소수정예의 아이들이라 훨씬 더 수준이 높았고, 대단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수업하는 장소도 바뀌었고, 수업은 주말에 이루어졌는데 수업을 받고 나올 때마다 아이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수업은 어렵지만 재미있고, 아이들이 너무 대단해서 감탄이 나온다며 흥분했다.
울아들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 당시 배우고 있던 중학교 과정 외 선행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분명 영재교육원 친구들 사이에서 버텨내기 쉽지 않을 텐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려, 자신보다 잘하는 친구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부러우면 부럽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본인의 실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내가 더 잘하게 될 거라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은 알지만, 그 또한 극복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활력을 찾았으며, 그 대단한 아이들 틈에서 그 아이들과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반면, 중 3 과정에 어렵게 다시 합류한 같은 중학교 친구 1명은 너무 대단한 아이들 틈에서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매주 영재교육원 수업이 지루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니, 결국 중도포기했다.
우리는 아이가 꿈과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을 응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근자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어떨 때는 대단하다 싶다가도 아이에 대한 너무 이른 판단, 혹은 너무 큰 기대를 하게 될까 봐, 그리고 그걸로 인해 아이가 부담감을 가지게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자체를 대견해하면서도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지켜만 봤다.
중 3 과정이 끝나갈 무렵, 아이가 3년 내내 준비하던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치렀고, 입시 결과 발표가 나기 전, 고1 과정 영재교육원 시험을 또 준비했다.
아이가 원하는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다면 굳이 고1과정 영재교육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만일 떨어져서 일반고등학교를 가게 된다면, 고1과정 영재교육원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라 영재교육원 수업까지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아이가 원한다니, 원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1과정 영재교육원 시험을 치러 가지 않았다. 고1과정 영재교육원 시험일과 과학고등학교 예비소집일이 같은 날이라 그날 우리는 과학고 예비소집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예비소집 행사가 한창일 때, 영재교육원 담당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OO이 학생이 시험을 치러 오지 않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선생님,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과학고등학교에 합격해 지금 예비소집 행사 중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랬군요.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그렇게 아이는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했고, 본인의 꿈을 위해 한걸음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