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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Oct 07. 2023

세상의 모든 걱정

엄마란

 50살이 된 아들이 70대 어머니에게 '차 조심 하고...'라는 걱정의 말을 듣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냥 한번 웃어넘기는 이야기로 들었었는데, 최근 이 이야기가 마음속에 맴돈다.


 엄마란, 어쩌면, 자식을 걱정하기 위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남부럽지 않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남부럽지 않게 아이와 잘 소통하며, 아이와 즐겁고 행복하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더 나아가 돈독하고 아름다운 가족이 만들 거라고.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그런데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병원에 가서 아기집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그러니까, 그렇게 '엄마'로 확정된 그 순간부터 나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짊어진 사람이 되었다. 원래 나는 '마음 편한 게 제일이다'는 주의이고, '가능한 걱정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하루아침에 엄청난 걱정들이 나를 뒤덮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몸은 이제 점점 변해갈 텐데 그건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일도 계속해야 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낳아야 하지? 낳고 나서 아이는 또 어떻게 키워야 하지?' 정부정책을 알아보고 맘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샴푸도 바꿔야 하나? 내가 쓰는 샴푸를 계속 써도 되나? 치약은? 화장품은? 밥은? 약은? 영양제는? 과일은? 초콜릿은? 그러고 보니, 커피는? 나는 커피 일을 하는데, 그럼 커피 맛도 안 보고 커피를 팔아야 하나? 신발은? 편한 걸로 바꾸는 게 좋겠지? 언제 바꿔야 하지? 임산부 옷도 입어야겠네? 너무 펑퍼짐한 건 또 싫은데? 일 하기 편한 임부복이 있나? 속옷은? 아기 낳을 준비는 뭐부터 해야 하지? 아기방도 만들어야 하나? 분유포트랑 젖병소독기를 미리 준비해놔야 하나? 유모차랑 카시트는? 태아보험? 그건 또 뭐지?


 세상에.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친구들이 아기를 낳고 아기가 좀 자라고, 둘째를 낳고, 둘째가 또 좀 자랄 동안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는 줄 알았으나,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한 거라곤 고작, 아기를 가진 친구에게 "축하해!" 한마디 말하고, 낳은 친구에게 "고생했어!" 한마디 말을 하고, 아기 신발이나 옷 하나 선물해 주고, 한 번씩 보는 아기 사진을 보고 예쁘다고 해주고, 혹시나 아기를 직접 만나도 "어머나 예뻐라~"하는 리액션이나 몇 번 하는 정도였다.  


 내가 관심이 없는 지난 몇 년 동안, 친구들은 어느새 육아전문가가 되어 척척 아기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뱃속의 아기는 점점 자란다는데, 임신 초기는 배가 별로 나오는 것도 아니라 내가 체감으로 느끼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2주에 한번 병원에 가기까지 그냥 생활하는 그 2주는 걱정에 걱정이 더해지는 시간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가 잘 있는지 걱정했다. '잘 있겠지. 엄마가 자기 일 잘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게 최고랬어. 아기 걱정은 하지 말고 내 삶이나 잘 꾸려나가자. 하나님이 잘 지켜주시고 계실 거야.' 아무리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걱정하다'가 아니라 '걱정되다'였던 것이다.


 빨리 배가 많이 불러서 아기 태동을 느끼는 날이 왔으면 했다. 그러면 아기가 잘 있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기가 뱃속에서 발로 차고 꿈틀거리면 '음, 아기가 잘 있군' 할 텐데.


 난 하필 입덧도 없었다. 입덧 심한 사람은 정말 너무 심해서 계속 울며 토한다면서, 몸무게도 10kg씩 빠진다면서, 그러면 병원에 가서 수액도 맞아야 한다면서, 입덧 없는 건 정말 축복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그래, 감사하지. 입덧 없이 하루하루 평온하게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지내니 얼마나 감사해.'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아기가 정말 잘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입덧이라도 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가 입덧을 이렇게나 하는 걸 보니 아기는 잘 있는 건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걱정을 하다 보면 혹시나 이 걱정이 아기에게 전해 지는 건 아닐까 또 걱정이 되었다. 엄마의 즐겁고 행복한 감정만 아기에게 가야 할 텐데. 나의 걱정과 불안이 아기에게 전해지면 안 될 텐데.


 그러다가 드디어 2주가 지나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고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났다. 아, 나의 아기가 잘 있구나.




 주위사람들은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질문에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들도 좋고 딸도 좋아요. 그냥 애가 튼튼하고 얌전하면 좋겠어요."라고 겨우 대답했다.


 속마음은 딸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 더 우세했다. 예쁜 옷 입힌 똘망똘망한 딸내미가 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아기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혹시라도 남자아이면 어떡하나. 슬퍼하면 어쩌나. 안되지. 내 아기에게 슬픔을 줄 수 없지. 그럴 순 없지.



 입덧 없이, 그 어떤 이벤트 없이, 무사히, 임신 15주가 지나고, 아기는 남자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아들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 그 순간, 막막함이 몰려왔다. 아들이라니. 이건 또 다른 차원의 걱정이었다. 나는 아들로 커본 적도 없고, 남자형제도 없어서 아들이 어떻게 크는지 본 적도 없는데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아들들은 어떻게 크나. 1살, 2살 때야 그렇다 치고, 애가 5살, 10살, 15살이 되면 어떡하나. 난 얘랑 무슨 대화를 하고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고,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나. 적정거리가 필요할 텐데 그건 또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유지해야 하나. 또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걱정되고 막막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아들은 어떻게 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걱정을 하고 살았어?" 남편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밥 주면 먹고, 학교 갈 때 되면 학교 가고, 뭐 그런 거지. 아들이라고 뭐 다른가." 나는 더 막막해졌다.


 주위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우리 아기 아들이래. 허허허. 아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니. 나 너무 걱정되고 막막해." 이에 대한 대답은 딱 두 종류였다. "아들? 하하하, 넌 이제 죽었다. 진짜 힘들어ㅋㅋㅋ" 하는 반응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 반응은 "아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였다. ? 아들이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그래?


 이야기들을 종합해 본 결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딸은 애교도 부리고 예쁘긴 한데 정신노동이 좀 필요하다. 떽떽거리기도 하고 자기 기분에 따라 좀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아들은 좀 쫓아다녀야 해서 체력이 필요하긴 한데, 단순해서 마음은 편하다. 밥만 잘 먹이면 된다.' 이 결론을 도출해 내고 나서야 내 남편의 대답이 이해가 되었다. 이 사람은 내 막막함에 공감해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준 거였다. 아, 아들이 그렇구나. 단순하고 사랑스럽구나.    




 이제 임신 18주 차가 되었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아기를 만날 날이 하루하루 더 다가오고 있다.


 배가 좀 나왔다. 원래 입던 옷들이 불편하고 안 맞아서 펑퍼짐한 옷들 위주로 입기 시작했다. 원래 신던 운동화도 답답해져서 크록스를 사서 신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배도 아프고 허리도 좀 아프다. 어떤 때는 너무 아파서 누워있어도 아프고, 자다가도 아파서 잠이 깰 때가 있다. 몸이 아프니 또 걱정이 된다. 아기가 괜찮은 건가. 잘 있는 건가. 당장 병원에 가서 초음파라도 한번 더 볼까.


 카페에 온 손님이 "배가 좀 나오신 것 같네요! 아기가 잘 크고 있나 봐요!"라고 한 마디 해주셨다. 요즘 나를 가장 안심시키는 말이다. "아기가 잘 크고 있나 봐요!"


 오늘도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자궁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아기가 잘 크고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나의 아픔이 위안이 된다. 괜찮다. 이 정도 아픔은 괜찮다. 조금 더 아파도 괜찮다. 앞으로 훨씬 큰 아픔과 고통이 있겠지만, 그것도 괜찮다. 나의 아기는 잘 클 테니. 그러니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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