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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날마다 외친다, 오늘도 무사히

직업윤리와 개인 건강의 균형은 가능한가

by 다온 Jun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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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온갖 잡동사니가 다 나와있고 주위가 산만한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반이 있다. 거기가 원래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걸 알고 있고, 한 시간 수업하고 나오기 바쁜 나 같은 교과교사가 주변 정리시키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기에 크게 떠들지만 않으면 점점 내버려 두게 되었다. 나는 인사와 정돈부터 가르치는 사람이라 학기초에는 설명을 많이 했는데, 좌절스런 큰 사건이 있은 후론 다 부질없다 느꼈다. 특히 그 반엔 양치기 소년이 하나 있어서 말을 최대한 아껴야한다(하지만 잘 안된다).


원어민과 같이 그 반 수업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오늘 전체적으로 너무 어수선하다"고 했더니 20대 중반의 중국계 미국인 교사는 나에게 한 마디, 아니 두 마디 했다.


Nothing happened. Don't be stressed out.


스트레스를 호소하고자 했던 말 아니었는데, 시끄러운 복도 한가운데서 그녀는 내게 이런 답을 내놓았다. 순간, 내가 불평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싶기도 하고 아무리 외국에서 잠깐 일하는 거라 해도 그녀에게 교사 마인드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초기에는 신경이 쓰였는데 이안 그래. 어차피 내가 고쳐줄 수 없는 건데 괜히 스트레스만 받으면 안 되지"하고 부연설명을 했다. 어쩜, 말하면서 그제야 스스로 다짐을 했던 것일 수도. 


그런데 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녀의 말 곱씹어졌다. 캬, 역시 '젊은' 사람들은 달라. 맞다. 주위를 어지르고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애들이 적지 있지만, 수업은 무사히 끝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몇 달만에 후배네 교실로 찾아가 근황을 나눴다. 남의 교실 문을 두드리는 건 쉽지 않다. 이것 내가 속한 이 집단의 특징이다. 그녀는 '잔소리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고 학생과 관계만 나빠지니 그냥 참고 넘긴다'는 말을 꺼냈다. 그걸 나보다 훨씬 일찍 터득한 네가 부럽다. 역시 '젊은'사람이라 달라. 이것은 나의 첫 제자들과 나이가 같은 현재 내 외국인 동료의 말 '나띵 해픈드'와 맥락을 같이 했다.  


나는 왜 그렇게 진작 포기가 안됐을까. 영국의 해리 왕자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trapped'라고 표현했는데, 나도 직업에 있어 스스로를 그렇게 옭아맸던 게 아닐까. 하나라도 뭘 더 말해줘야 할 것 같은 교사들의 보편적 심리, 나도 그 직업병 환자란 말씀이다.



오늘, 장애를 가진 학생을 감금 폭행한 여학생들이 구속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늘이 노할 일이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나도 댓글에 공감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돌고 돌아 아주 갈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댓글 하나가 유난히 맘을 더 쓰라리게 했다.


'이런 애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해'          


그분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고, 내 생각도 그러하다. 그런데 너무나 죄송하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현장 근무자로서 그건 쉽지 않은, 더 솔직히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다.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말하면 잘못하지 않았다고 우기고 덤벼드는데 어떡하랴. 물론 그런 사례는 백에 하나밖에 안 되지만, 그만큼 그 '하나'는 스케일이 엄청난 편이라 후폭풍도 크다. 나도 어디 가서 경력으론 뒤지지 않을 만큼이 됐는데, 불운이라 해야 할지 예방주사를 맞은 거라 해야 할지  그동안 선후배들의 안 좋은 예들을 너무 봐왔다. 담임교사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브로커를 대동해 거짓을 꾸미고, 담임교사를 계단에서 밀어 뼈를 바스러지게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담임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바로 내 옆의 동료들이 겪었는데 어찌 남의 일이라고만 여길 수가 있을까. 


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 그것도 한국에서 근무한 지 3년 된 외국인이 나에게 'Nothing happened'라고 조언한 것이 그 사람의 원래 성격에서였던지, 요즘 20대 초중반의 사고인지, 우리 근무지 분위기에 그만큼  빠삭해서인지, 한국 사회를 꿰뚫어 봐서인지 그 이유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라 인상이 강하게 남다. 나도 진작 그렇게 가볍게 근무했었더라면 심신이 더 건강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 대충대충 하는 게 아직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아직도 멀었나보다.


건설 현장에는 '오늘도 무사히' 싸인이 눈에 잘 보이게 여기저기 붙어있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마음에 새긴다. 오늘도 무사했으니 감사하고, 내일도 무사하길 빈다. 시험볼 때 공무원의 단점으로 외웠던 '무사안일주의'가 거룩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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