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5개 국어는 못해도 악기 5개는 다루는 사람이 되는 게 자기만의 인생 목표라 퇴근 후 그녀는 바빴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무릇 사람이란 너무나 다양하고 누군가에 의해 바뀌지 않고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인바 지나는 어릴 때부터도 음악에서 얻는 행복이 컸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무생물에서 취한 소리에서 큰 기쁨을 얻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노랫가락, 사람과의 대화는 그 희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일어나서부터 집을 나설 때까지, 출근하는 길에, 일하는 틈틈이, 퇴근길에, 퇴근해서 잠들 때까지 ‘비인간’의 것들은 그녀의 귓가를 채웠고 그녀는 거기서 안정감을 얻었다.
오늘 그녀는 기타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었다. 제 기분을 담은 곡을 골라 왼손으로는 코드, 오른손으로는 아르페지오를 펼치며 그녀는 대화에 집중했다. 대신 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않게, 본인과 악기만 느낄 정도로만 냈다. 다음은 피아노 차례. 좀전과 다르게 건반과는 마음껏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전자키보드라 그들의 대화 내용은 모두 헤드폰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지나는 밖에서 내지 못한 분노를 베토벤으로 얘기하고 재치 있는 정담은 모차르트로 나누는 편이었다. 기분을 업시키고 싶을 땐 잔나비의 밴드 감성에 의지하고 웬디의 시원한 고음을 상상하며 답답한 속을 다스리기도 했다. 다른 대화 상대자들은 그럴만한 기회가 있을 때만–이 역시 아파트에 사는 이유인데 소리 자체가 너무 커서 집에서 절대 연주할 수 없다- 만났다. 웬만해선 사람에게 색안경을 끼지 않는 지나이기에 그녀는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기도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장점이자 단점인 그 성격이 그녀를 더욱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묵묵히 들어주고 들려주는 음악에 다가가게 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삶에 안도하였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어김없이 잠자기 전 기타부터 찾았다. 오늘은 ‘Fix you’부터 콜드 플레이의 몇 곡이 오프닝이었다. 그러다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정말 오아시스처럼 눈물이 차올랐다. 아까 낮에 기분 나빴던 감정이 확 솟구쳤더랬다. 기타는 친히 그녀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아차 싶었다. 인터폰이 울리지 않을까 갑자기 조마조마했다. 지나는 관리사무소, 경비실, 위층을 직접 찾아가 층간소음에 괴롭다고 직접 호소를 한 인물이었다. 평소엔 옆에서도 들리지 않게 줄에 손가락을 깃털처럼 스치기만 하는데 그날은 기타와의 소통에 심취해 피크까지 쥐고 스트록을 해버렸다. 다행히 아무도 민원을 넣지 않았는지 지나의 집은 계속 고요했다. 아니면 실제 남들에게 미치는 데시벨은 그녀가 느꼈던 데시델보다 더 낮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민폐객이 된 줄알고 크게 놀란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아니던 게 아니었다. 출근길에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문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던 것이다. 익명의 항의문이겠거니 하고 – 그녀도 누군가에게 살의를 불러 일으킨 존재가 된 건가- 뜨끔했는데 이게 웬걸.
‘어제 연주 잘 들었습니다. 우울했는데 듣기 좋았어요’
이쯤 되면 멜론의 광고 카피처럼 어떤 입주민의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그녀가 재능을 기부했나보다. 세상에 뭔가 일조하고픈 그녀의 소망이 이렇게 하나 이루어진 건가. 덕분에 지나의 출근길은 평소와 다르게 행복했다.
그런데 누굴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작은 평수만 있는 동이라 1인 또는 2인 가정이 전부인지 지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다른 동보다 북적임이 덜해서 좋고, 자유로운 영혼들이나 약간은 적막한 세대들도 그만큼 많다. 지나는 전자로서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 있는 게 더 좋은 사람이니 이 아파트가 맞는 사람이다. 정신건강의학과가 동네 내과처럼 사람이 붐비는 병원이 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지나는 다행히 건강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사실은 후자로 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것일 수 있다.
그날 밤, 지나는 자신의 수면 절차에 돌입했다. 반신욕을 했고 마그네슘 한 알을 먹었고 온수매트의 온도가 올라가도록 스위치를 켜두었고 마침내 기타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피크를 쓸까, 손가락으로 스트록만 세게 할까, 악기하고 나하고 둘만 놀까 아니면 그 사람도 끼워줄까’
지나는 책상 모서리에 붙여둔 아침 쪽지를 흘깃 한 번 쳐다보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녀는 평소처럼 타인은 들리지도 않게,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듯 현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속으로 노래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중에서 까딱거리며- 리듬을 탔다. 오늘도 악기는 그녀에게 최고의 기분을 선사했다. 땡큐, 마이 브로 앤 시스터! 나중에 그녀의 이성이 또 감성을 제어 못해 옆집으로 소리를 내보낼 때가 있을지 모르니 그때 함께 즐기시자. 그녀는 즐겁게 연주를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싸하며 스친 생각. 너무 착한 사람이라 민원을 그런 식으로 넣은 거 아니었을까. 조용하라는 말은 차마 –밤에 쓰레기봉지 버리러 가다 아파트 내에서 묻지마 폭행이 뉴스에 나오던 시기이니- 못하고 대신 돌려 돌려 그렇게 말한 거 아니었을까. 이런 의미든 저런 의미든 지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가 꿈꾸는 건 서로 돕고 돕는 사회. 그녀의 음악이 그에게 정말 듣기 좋았대도 뿌듯한 일이고, 사실은 그게 민원이었대도 부드럽게 말해준 것이 고마운 일이니 말이다. 덕분에 지나의 마음 한편에 켜켜이 보관 중인 회색빛 하나가 조심히 거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