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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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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3. 2023

세레나데 3

 '되는 일도 더럽게 없네'

 은아는 기분이 나쁠 대로 나빠진 상태로 퇴근을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급기야 눈에 보이는 돌 하나를 있는 힘을 다해 걷어찼다. 돌을 괜한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게 미안해서였을까. 은아는 그 돌이 어디까지 굴러가나 가만 지켜보았다. 돌은 생각보다 멀리 굴러갔고 전봇대 근처에서 멈췄는데 그 옆에는 작고 동그란 돌이 예쁘게 앉아있었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는, 바닷물에 잘 다듬어진 돌 같았다. 아주 예뻤다. 은아는 자신이 함부로 대한 그 돌 말고 장식품으로도 손색없는 그 돌을 주워왔다. 그녀는 돌에 네임펜으로 4월 14일이라고 적어 책장 맨 위칸에 올려두었다. 

 그날밤, 얼마만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비가 왔다. 빗소리는 은아가 제일 좋아하는 ASMR이다. 은아는 불을 끈 채 빗소리를 들으면서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베란다 밖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시간은 더 흘렀고 은아는 자신이 진정 원하던 멍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때, 쿵쾅 소리가 시작되었다. 평안은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들의 공동주택 에티켓은 외딴곳에 홀로 사는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자유로움 수준이었다. 당신들도 이제 이웃의 존재감을 느껴보시오. 은아는 미혼의 1인 가정이므로 최대한 안전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녀는 한숨이 세 번 나올 때까지 자신의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이디어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눈이 마주친 돌과 그녀.

 

 '내가 갔다 올게'

 은아는 자신이 돌을 주은 게 아니라 돌이 자신에게 온 것 같았다. 본인 대신 윗집에 살려달라고 외쳐줄 단 한 존재. 밤 12시, 은아는 베란다의 에어컨 안전바를 지지대 삼아 왼손으로는 샷시를 꽉 잡고 오른손으로 위를 향해 힘껏 돌을 던져 올렸다.

 '딱'

 이 소리를 들었을까 못 들었을까. 은아는 깜깜한 어둠 속 찍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통쾌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긴 했으니 말이다. 그다음 날부터 은아는 퇴근길에 매일 돌을 주워왔다. 마땅한 돌이 안 보이는 날에는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고 그보다 더 멀리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주워왔다. 그리고 매일 밤, 평소 자신의 취침 목표시간을 훌쩍 넘은 시각에 윗집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이 유리에 닿는 '딱'소리는 은아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물체에 부딪혀 낙하하는 돌은 의자왕과 함께 떨어지던 궁녀들의 충성심을 떠오르게 했다. 낮엔 돌을 줍고 밤엔 돌을 던지는 은아. 마침내 돌아버린 건가. 궁지에 몰리면 광기가 나오는 법이지. 그게 바로 생존의 법칙. 은아의 집은 항상 불을 끈 상태였고 한밤중 아파트 단지는 거의 깜깜했으며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처음에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 은아는 졸려도 기어이 자정까지 눈을 뜨고 있다가 윗집이 퇴근을 알리면 그 소리에 재깍 반응해 돌을 집어 들었다. 그들은 며칠 만에 돌의 존재를 느꼈고 남자는 베란다 너머의 새까만 주변을 향해 "누구야"하며 괴성을 질렀다. 소리는 앞 단지에 닿아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멋모르고 당한 소음이었으면 '웬 미친놈이야' 하고 자다가도 깜짝 놀랐을 텐데 은아는 남자의 분노가 고소했다. 당신도 한 번 당해 보시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에 쿵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은아는 오가며 경비아저씨 두 분께 목례를 하긴 했지만 지난 세 번의 방문 이후 몇 달 만에 말문을 열었다. 

 "혹시 1411호 이사 갔나요? 요즘은 소리가 안 들려서요"

 아저씨는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입주자카드를 한 번 찾아보겠다 하셨다. 일주일 전에 누가 새로 이사를 왔단다. 진짜 이사 갔나 봐! 은아의 마음속에 아주 오랜만에 차가운 폭포가 왈칵 쏟아졌다. 늘 뜨거운 불길이 치솟던 속이 아니었던가. 이사가 원래 그들의 계획이었는지 은아의 복수 효과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돌을 맞은 지 6개월 만에 퇴거했다는 게 중요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유후, 은아의 승리다. 음... 그건 아니다. 왜냐면 은아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은 돈보다 권력보다 우선이기에 하루 세 번 안정제, 항우울제, 수면제로 살아가는 그녀는 절대 승자가 될 수 없었다. 복수의 끝은 결국 쌍방의 아픔인 것. 은아는 의사 선생님에게 복수의 과정은 알리지 않았으나 윗집이 이사를 간 것은 알렸다. 의사 선생님의 예상대로 은아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약의 용량은 점점 낮춰졌다. 은아의 심장은 6개월쯤 지나니 약 없이도 더 이상 낙하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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