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필요 사회
아침 출근 커피에 과몰입을 해보면
프롤로그-
출근 직후 직장 풍경. 커피머신 앞에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잠이 안 깬 나, 서류를 보던 너, 배가 고픈 후배, 향기만 맡고 가겠다는 선배, 맛있어서 마신다는 동기. 무언가의 조치가 필요해 그들은 출근을 하자마자 자신의 업무공간으로 가지 않고 곧장 이 작은 공간 구석을 찾았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빈 속에 들이붓는 커피는 독. 이걸 모르는 현대인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악행을 되풀이한다. 아이러니다.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면서 사실은 자기가 더 몸을 못 살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많은 이들은 액체 한 잔에 의탁하여 자신의 하루를 작동시킨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출근은 했지만 사실 자아는 반응이 없는 상태. 자동차는 기름을 먹어야 움직인다. 인간도 연료가 필요한데 뇌에 에너지를 주는 건 포도당이지만 탄수화물은 널브러진 뇌를 차렷 시키는데 역부족이다. 혈액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을 다니며 군기를 잡는 녀석이 필요한데 싸고도 강력하게 먹히는 게 바로 카페인이다. 그 어마어마한 녀석은 때로 제 주제도 모르고 내가 잠들고 싶어하는 순간까지 활개를 치며 나를 긴장시킨다. 무의식까지 점령하겠다는 거다. 내 신체 장기들도 자존심은 있기에 반기를 들 때도 있다. 가슴이 두근댄다거나 손끝이 떨린다거나.
- 지금 '정상' 작동하고 있잖아, 액체 주입 더는 멈춰.
- 미안, 그래도 일단은 마시고 볼게.
사람들은 뜨끈한 혹은 차가운, 샷을 하나 혹은 둘 셋 내린 커피를 들고 각자의 위치로 향한다. 무표정으로. 기계처럼. 나의 하루는 으레 그렇게 시작된다. 거울을 보았다. 우린 내부 시스템이 카페인으로 코팅된 로봇이 되어가는 걸까.
디벨롭-
때는 바야흐로 AI의 시대.
우리는 트렌드를 아는 신인류.
기기를 연구하고 작동시키는 걸 넘어
직접 로봇이 되었다.
지킬박사가 스스로를 시험대상 삼았던 건 파멸로 끝났지만
우리의 시도는 비교적 그럴듯한 결과를 이루어낼 것이다.
기계는 감정이 없고
감정 상할 일이 없으면 직장은 더 행복한 곳이 될 것이고
우리가 그를 완벽히 본받을 수만 있다면
각자는 매일 더 행복한 직장인이 될 테니까.
에필로그-
카페에 가면 뭘 마실지 잠깐씩 고민한다. 오늘은 밀크티였다. 맛있어서 실컷 먹고 싶은 마음에 제일 큰 사이즈를 주문해서 행복하게 마셨다. 그런데 가슴이 뛴다. 손이 떨리는 것 같다. 왜지? 뒤늦게 깨달았다. 얼그레이에도 카페인이 있다는 것을. 하루만이라도 카페인에서 자유한 줄 알았건만 내 자아는 무의식에서도 투항하고 말았다. 난 혼자서도 정신을 말갛게 차려볼 것이다. 마침 위산이 시원하게 분비되고 있다. 의무실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