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즐거운, 끝이 없는 고기의 세계
규카츠. 1인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하는 음식. 사실 고기를 굽는 건 나와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조금 쑥스럽지만 여즉 밥물도 못 맞춰서 고기 굽는 것도 서툴다. 차돌박이처럼 금방 구워지는 건 곧잘 하지만 삼겹살이 조금만 두꺼워도 대체 언제 익는 거냐며 수십 번을 뒤집는다. 이쯤 되면 그냥 성격이 급해서 고기 굽는 것도 잘 못 하는 것 같기도.
아무튼 아직 밥물도 못 맞추고 고기도 잘 못 굽는 나에게 규카츠는 한국에서 굳이 찾아가서 먹어야 할까?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음식이었다. 스테이크를 먹으면 레어를 주문하지만 그건 소고기일 때고, 괜히 돼지고기 덜 익은 거 먹어서 탈 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알라가 추천한 맛집이라면 그런 불편은 100번이고 감수해야지! 알라가 나에게 추천한 맛집은 교토 가츠규로 규카츠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1시 반이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과연 맛집이긴 한 건지 내 앞에 3팀 정도 웨이팅이 있었다. 캐리어에 앉아 내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무슨 메뉴를 시켜야 할까 열심히 고민했다. 다행히 한 명 자리는 금방 나서 나는 내 앞에 있는 2팀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바퀴 빙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앞을 보니 친절하게 한국어와 영어로 규카츠를 먹을 방법이 쓰인 안내판이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지원하는 식당은 맛집일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교토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성공으로 끝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가장 기본적인 규카츠 세트를 시켰다.
규카츠가 금방 나오는 편은 아니었고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소스 통과 안내판을 찍어봤다. 개인적으로 소스가 많은 식당을 좋아하는데, 찍어 먹을 종류가 많다는 건 색다른 조합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은 기다림 끝에 내가 시킨 규카츠가 나왔다! 소스가 무려 4종류다! 소스 종류를 보고 진짜 여기 오길 너무 잘했다고 자신을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했는지! 아래 3개로 나뉜 종지 그릇에 담긴 소스와 오른쪽 아래에 있는 둥근 그릇에 담긴 카레 소스까지 총 4종류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스테이크 소스, 참깨 가루, 간장이다. 간장에는 규카츠 그릇에 있는 고추냉이를 풀어 먹으면 된다. 카레 소스가 나와서 밥에 비벼 먹어도 되려나, 싶었지만 비벼 먹기에는 소스가 너무 짰다. 규카츠에만 얌전하게 찍어 먹는 걸로.
규카츠에 대한 총평은 ‘교토 여행 중에 여기 안 가면 유죄’ 일 정도다. 솔직히 처음으로 규카츠를 먹는 거라 사진으로 봤을 때나 맨눈으로 봤을 때나 고기가 너무 빨개서 이거 다 안 익은 거 아닌가? 싶었다. 이 상태로 그냥 먹는 거라고? 하고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들 너무 맛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그래서 한 번 그냥 속는 셈 치고 먹어봤는데...
셰프님. 감히 제가 셰프님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고기의 세계는 끝이 없군요.
규카츠는 다들 꼭 여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사 먹고 오시길. 어디를 가야 하느냐면 이곳을 추천하겠지만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다들 규카츠를 꼭 먹어보길 바란다.
가츠규에서 추천하는 소스 조합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간장과 고추냉이 조합이다. 고추냉이가 풀어지는 모양이 독특했다. 일단 튜브형으로 짜 먹는 형태는 아니고 일식집에서 볼 수 있는, 고추냉이가 아주 작은 원처럼 몽글몽글 퍼지는 형태도 아니었다. 가느다랗고 짧은 실이 펴지는 모양이었다. 뭔가 그런 모양이 더 맵지만 깔끔하게 느껴졌다. 그 외 소스 중에서 덜 맛있었던 건 의외로 카레였다. 내 입맛에는 뭔가 잘 안 어울렸다. 그렇지만 카레 자체는 맛있어서 젓가락으로 조금씩 따로 떠먹곤 했다.
그 외로 양상추 참깨 샐러드와 하얗고 고슬고슬한 밥, 된장국까지 곁들여 든든하게 배를 채워 교토에서의 마지막 한 끼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