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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Dec 03. 2020

아침 설거지

깨끗한 싱크대, 깔끔한 마음

새벽 4시가 안된 시간. 눈을 떴다. 벌써 며칠째 새벽에 잠을 깨는 것인지. 요즘 하루에 4시간 남짓 잠을 자고 있다. 회사를 다닐 때도 5시간 이상은 잤었는데 이제는 겨우 4시간이라니. 


다시 잠들겠거니, 하는 마음에 뒤척거렸다. 한 동안 뒤척이다 30분이 지난 후에야 포기를 하고 책을 읽었다. <소설가를 위한 소설 쓰기>, 첫 문장과 첫 문단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으니 어느덧 아침 명상 시간이 와버렸다. 아침에 하는 단체 명상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물론 엄청 집중해서 잘하는 건 아니다. 명상하는 내내 콧구멍 앞 인중에 집중을 하며 호흡을 느끼려고 하지만 끊임없이 잡념이 올라온다. 어제 못한 일이며, 오늘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끔은 옛날 일도 떠올라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생각이 올라오고 감정에 빠져들지만 허우적거리진 않는다.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을 느낄 수 있다. 명상 또한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난다. 


명상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아니, 시간이 잘 간다. 15분이 원래 길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한곳에 집중하여 몰입하기 때문에 그리 느끼는 것이다. 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나?'하고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칙센트 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의 기쁨인 것이다. 


아침 명상을 마치면 늘 그렇듯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커피도 좋고 허브 민트도 좋고. 오늘은 허브가 마음에 든다.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컵을 찾았다. 이런 컵이 하나도 없다. 싱크대 안에 가득한 컵들. 많지 않은 설거지 거리였지만 내가 필요한, 그리고 좋아하는 컵들이 싱크대 안에서 '날 씻어주세요'하고 있다. 


한 참을 봤다. 고민하다, 고무장갑을 꼈다. 아내가 손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를 물에 적시고 세제를 묻혔다. 컵을 들고 하나씩 하나씩 씻어나갔다. 아이들이 간밤에 사용한 접시와 수저며 포크도 깨끗이 닦고 씻었다. 수압이 높은 수도 물을 살짝 틀고 하나씩 하나씩 헹구어 건조대에 올렸다. 어느새 깨끗해진 싱크대를 보니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올라온다. 


설거지 거리 하나 없이 깨끗한 싱크대. 


마지막으로 물기를 닦았더니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싱크대가 깨끗해졌다. 상쾌한 기분. 설거지를 했더니 마음도 깨끗하다. 깨끗한 마음. 


'이런 깨끗한 마음을 늘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이런 마음을 갖고 살고 싶다. 그러나 내 머릿속, 내 마음은 불안과 우울, 성냄, 기쁨과 감사, 사랑이 물결을 치며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요동을 친다. 가끔은 바닷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던 어두운 감정들이 올라와 폭풍을 동반한 격정의 파도를 만들기도 한다. 


직장을 그만둔 지 두 달째. 직장을 그만두고 맞이했던 자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20여 년 간 다닌 회사에 더 이상 구속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월급날에 알았다. 생활비를 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는 것을. 


'아, 월급이 안 들어오는구나! 아내에게 생활비를 줘야 하는 데..'


그날 내 마음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다음 달에는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지만 직장을 다닐 때만큼 수입이 확실하지 않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먹고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다니. 이제 두 달이 지나 세 달째에 접어들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 가졌던 '나의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변화가 없다. 


불안과 걱정. 


그래, 다시 마음부터 가다듬어야겠다. 설거지를 하듯이, 내 마음부터 다독여야겠다. 그렇게 나는 명상을 한다. 


※ 아침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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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C Technical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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