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이 되려는, 나의 스물여섯 이야기
한달의 도전_성장일기를 담아내면서 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도, 완전히 변화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나의 능력도 가진 것도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졌달까. 똑같은 상태를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걸까? 뭐라고 결론 짓기가 어렵다.
나에게 오늘에서야 질문해본다. “그래서 나는 강한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가?” 대답은 “No” 혹은 “모른다” 쯤 될 듯 싶다. 단단하기 보다는 좀 더 말랑해진 것 같다. 유리처럼 아슬아슬하던 몇 달 전의 나를 떠올려보면 현재는 슬라임 같아 졌달까.
나의 모습 중에 <겁이 많아 소심한 성격>을 바라보는 상황이라고 가정할 때, 예전의 나 혹은 몇 달 전의 나는 마음에 금이 갔었다. 그리고 금이 간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다 어느날 갑자기 사소한 온도 변화 따위에 (누군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쨍그랑 혼자 무너져 버렸달까.
그러나 적어도 요즘의 나는 아무리 바닥에 내팽겨진 슬라임일지라도 조각조각 부숴지진 않더라. 오히려 이곳 저곳 찰싹 달라붙어 새로운 환경들을 즐기고 있달까! 그리고 나를 만난 사람들은 잠시나마 주물럭대는 슬라임의 감촉처럼 힐링되길 바라고 있다.
유리가 깨졌을 때 다시 녹여서 다른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여태까지 그렇게 버텨온 것 같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부정하진 않는다. 비록 이번 한달 챌린지의 원인은 최근 1년간 내 안에 요동치는 불안정과 두려움이 몇 개월 전 우울과 부정으로 뒤덮였던 이유에 있었다.
이전의 나는 유리처럼 깨지고, 잠시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 내 마음을 녹여서, 다시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마음의 유리 공예품을 빚어왔던 것 같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달까.
내가 지금 스스로를 슬라임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비유는 찰나의 경험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딱딱하게 굳어서 다시 수분없는 깨지기 쉬운 상태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슬라임으로도 지내고, 어느 날은 생명력 있는 단단한 나무처럼도 지내고, 또 다른 어느 시기에는 누군가를 따스하게 해주면서도 탄탄한 담요같은 사람으로도 지내고 싶다.
그래, 앞으로 끊임없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련다. 시인이나 작가는 늘 좋은 것들에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 그 시시각각 찾아오는 영감은 그들의 주제나 제목과 비유를 변화하게는 하지만, 그들이 펜을 쥐고 쓰는 행위를 변화하게는 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아마 크게 변화하지 않는 나의 욕구 및 본질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감과 생각, 경험들로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날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내가 또 다시 어둠을 마주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 따위 보다는 이 기쁨과 평안을 즐길 수 있는 날까지 계속 즐겨보고 싶다.
내가 기특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응원해주듯이 나의 글을 읽어주시고 like를 눌러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영상을 찾아보시고 응원을 남겨주시는 내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존재가 너무 감사하다. 내 삶에서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우린 지금 각자의 세계에 서로 존재하겠구나.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