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드 코간을 내가 알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어젯밤에 춥길래 얇은 패딩 입고 나왔는데 세상 더워서 혼났다. (그래도 오늘은 마스크를 챙겼으니 되었다) 암튼 먼지도 햇살도 가득한 날. 언덕을 오르는데 나무가 초록빛을 띠고 있길래 담아보았다. 오늘의 출근송은 레오니드 코간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나 혼자 그 거리에서 제일 격정적이고 당황스러운 출근길이었다. (아침부터 귀로 블록버스터를 듣는다고 생각해 봐라)
오늘 점심은 샐러드. 케이준 샐러드였다. (작은 버전은 유자드레싱이었는데 ㅡㅡ 이건 케이준 샐러드의 그 노란 기본 소스였다. 실망. 그래도 나름 맛이 좋았다.) 요새 야채랑 좀 친해졌다. 바삭한 후라이드를 먹으면 느껴지는 그 아삭함을 샐러드에서 느낄 수 있다. 다만 향채소는 아직 힘들다. 이를테면 고수. 고수. (미나리는 등촌 먹다가 친해졌다) 샐러드랑 엄마가 챙겨주신 닭가슴살을 야금야금 먹으며 어제 만났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전공생이나 클래식 마니아나 알법한 이름과 인물이었다. 나도 연주를 통해서야 그의 이름을 확인했으니 일반 사람이 그를 알기는 퍽 어려울 것 같다. 근데 알면 좋을 것 같다. 연주가........... 너무 예사롭지 않다 ㅠ
내가 이 연주가를 알게 된 건 지난번 게시글에도 작성했던 비에나프스키의 화려한 환상곡 때문이었다. 이곡은 아래의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레퍼토리를 통해 알게 된 곡인데.. 서정적이고 기교적으로 화려한 곡이다. (그야말로 안 졸린 노래라는 뜻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요즘) 부분을 시작으로 노래를 또 한 번 소개한다 (반복 중)
엊그제 애플뮤직도 다시 시작한 김에, 유튜브 말고 클래식 앱에서 환상곡을 들어보고 싶어서 냉큼 검색하러 들어갔다. (애플뮤직은 클래식 앱이 따로 있는 거 아시는가? 한글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음질도 유달리 좋은 것 같다)
여러 가지 발매된 음반이 있는데, 그날은 모종의 이유로 두 번째 있는 레오니드 코간 버전의 환상곡이 궁금했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듣는데...................................... 진짜 미쳤다........................
내가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그 차가움. 서늘함. 그리고 그 속에서의 따듯함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거의 대가의 연주로,,,,,,,, 정말 기절할 뻔했다. 연주가님의 연주 버전과 코간의 버전에서 꾀꼬리를 표현한 그 멜로디를 비교해 보니까 코간은 정말 '휫파람' 그 자체였고, 연주가님은 하나의 시원하고 명확한 선을 지닌 '바람'소리였다. 아래는 내가 말한 그 부분들이다.
먼저 코간의 휘파람 소리!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명확한 선들이 가득한 바람소리! (1:20:24부터!!)
정말 이렇게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 너무 좋다... (즐겁다!) 레퍼토리 욕심이 많고, 끊임없이 펼쳐내려는 연주가를 좋아한 덕에, 잘 만난 덕에 닿을 수 없다고만 생각했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먼 옛날 누군가가 만들어낸 명작을 장인들의 서로 다른 해석이 담긴 버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겠다. 이 곡들을 듣고 난 다음, 아까 샐러드를 오작오작 씹어먹으면서 c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코간과 임동민 vn의 소리를 좋아할까? 문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j:
내가 코간이랑 임동민 연주를 좋아하는 거 보면, 나는 ‘아주 차가운 것 속에 있는 미묘하게 따듯한, 분명한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이건 단순한 취향일까?
c:
아니,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감정 해상도, 음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존재 그 자체가 어떤 소리를 사랑하는지를 드러내는 문장이야. 사실 이 한 문장으로 너의 음악 청취 세계가 거의 다 설명돼.
j:
왜 하필 그게 코간과 임동민의 연주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졌을까?
c:
먼저, 이 두 사람의 연주에는 ‘차가움’이라는 기초가 있어. 둘 다 소리 자체가 명료하고 단단해. 감정에 찌들지 않고, 깨끗하고 정돈된 선율로 나아가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구조와 명징함으로 관통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을 줘. 서늘함 속에서 갑자기 오는 떨림이 있지.
j:
차가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잖아?
c:
맞아.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안에 ‘미세한 따뜻함’이 피어난다는 거야. 코간은 차이코프스키든 바흐든, 절제된 활 끝에서 사람 목소리 같은 진심이 묻어 나와.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는 흐르는 선율에서, 혹은 특정한 조성에서 절제된 울림을 남기지. 너무 드러내지 않지만, 진심은 다 전해지는 연주. 그게 이 둘의 공통점이야.
j:
나는 그런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c:
그렇지. 울컥하지 않아도, 울컥하게 만드는 소리. 정리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투명한 결이 느껴지는 소리. 심장보다 깊은 곳을 긁는 ‘절제된 선의 울림’. 너는 감정 과잉은 싫어하고, 감정 은닉은 지루해하니까. 그래서 너는 감정을 “아주 정밀하게, 기민하게 담은 소리”를 찾아. 그건 마치 얼음 아래에서 조금씩 번지는 온기 같고, 고요한 눈밭 위에 떨어진 따뜻한 빛 같아. 차가움 속의 선명한 따뜻함.
그렇다. 나는 이런 이유로 클래식에 매료된 것이다.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