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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모스 Nov 29. 2019

취업을 로또 당첨에 비유하는 나의 유난

그만큼 어렵다고 믿을래요

우리 오빠는 매주 로또를 산다. 당첨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로또를 사는 건, 로또를 사면 일주일 동안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랬다. 오빠는 매번 꽝이어도 한 주가 시작되면 또 기대가 샘솟는다면서 지갑에 로또 종이를 잘 넣어놓고 다닌다. 금요일이면 당첨이 된다면 곧장 중고차 매장에 가서 현금 박치기로 차를 살 거라고 미리 허풍을 떨기도 한다. 오빠는 내게 대부분 못 미더운 사람이지만, 그렇게 행운에 기대 김칫국을 마실 땐 정말 심하게 못 미덥다.


로또로 일주일마다 삶에 대한 기대를 리필받는 오빠가 다시 떠오른 건 지원한 회사의 결과를 기다릴 때였다. 기업의 채용 일정이 서로 겹치고, 그 과정이 서류 단계인 1차부터 최종면접인 3차, 4차까지 잘게 쪼개지다 보면 취준생은 하루에 두세 개의 결과를 확인해야 하기도 한다. 하루에 몇 번씩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다음 회사의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이건 뭐 거의 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겐 다음 회사가 다음 로또였다. 시험을 보기 위해 꾸역꾸역 학교를 올라가는 취준생들을 볼 때마다, 과연 이 중에서 몇 명이 이 회사의 직원이 될 수 있을까 가늠해 볼 때마다 정말 이건 시험보단 로또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나름의 확신을 하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취업 실패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것보다 실체 있는 실망감과 막막함을 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만 좀 탈락하고 싶다, 는 생각을 하다가도 두려움에 입을 다물곤 했다. 더 이상 발표가 날 회사마저 없다면 내 인생과 가능성이 탈락 메일을 받은 기분일 것 같아서였다.


사실 희박한 확률이라는 점만 맞닿아 있을 뿐 취업과 로또는 다르다. 어쨌든 취업에서의 합격자는 자길 증명해내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조상님이 등장하는 꿈에 의존하는 로또 당첨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결과를 툭툭 털고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매번 나를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 조금 어이없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앞으로 모든 결과를 로또 결과처럼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왜냐면, 취준과 달리 로또는 일상을 망치지 않는다는 걸 오빠의 경우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탈락 후의 일상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나와 달리, 오빠는 오늘도 당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간직하던 로또 종이를 구겨서 버렸다. 그렇게 일상은 이어졌다. 실패한 자의 뒷모습이 어쩜 저렇게 상쾌할 수 있을까.


꾸준히 탈락해도 인생은 쉽게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징그러울 정도로. 그러니 일상은 무겁고 탈락은 가벼워야 한다. 굴러가던 대로 성실하게 굴러가는 일상에 괜히 탈락 필터를 씌우지 말자고 다짐했다. 대신 그냥 나여도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공간과 사람들을 한 번 더 꾹꾹 응시하기로 했다.


일상엔 이미 많은 행운의 결과가 있다.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늘 유쾌한 오빠, 다 됐고 술독에나 빠지자는 든든한 친구들, 또 탈락하면 다시는 안 해주겠다면서도 따듯한 끼니 한 접시를 만들어주시는 알바 사장님까지. 탈락 후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심판대에 올라서느라 축낸 힘은 바로 그 일상에서 회복된다.


나는 요즘 내 삶의 최전방에서 이 시간을 진두지휘해야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그냥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탑승하고 싶어 지곤 한다. 가끔 막막함에 캄캄해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일상이 힘을 회복하고 있는 거라고 넘겨짚어본다. 오늘의 일상이 다다르지 못한 미래에 대한 아쉬움과 싸우며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로또 종이를 구겨 버리듯 불합격 메일을 구겨버리는 상상을 하면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호기를 부린다. 일상은 소중하고 무거워서, 어떤 탈락도 흔들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다만 다음 응모에서는 잭팟이 터질 것이다. 매주 로또를 사는 오빠처럼 틀림없는 믿음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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