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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휘 May 16. 2023

쉬운 행복, 들기름 김치찜

들기름 김치찜


3주간 집주인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마침내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이 집을 떠나기로 했다.


간밤의 꿈에서는 이 집에 우리 가족이 복작복작 모여 살고 있었다. 엄마는 아침으로 맛있는 김치찜을 내주었다. 뜨끈한 쌀밥에 푹 익은 김치를 가득 올려 슥슥 비비자 뭉근하게 끓여 충분히 졸아든 김칫국물이 밥알 사이사이에 배어든다. 그 짭조름한 감칠맛에 군침이 돌고 입맛이 살아난다.


주말 정오, 일어나 보니 거실에 다스운 햇살이 가득하다. 나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한다.

2년간 살던 집에 계속 살 수도 있었지만 상황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익숙하고 편한 길 대신 새롭고 번거로운 길을 걸어갈 차례가 왔다. 앞으로 석 달 안에 우리의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발품을 팔고, 돈을 융통하고,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심란한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앞두고, 나는 일단 김치찜을 만들기로 한다.



1. 물 1L에 코인 육수 2알, 설탕 1숟가락, 들기름 3숟가락,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한 손질된 국물용 멸치 10마리를 넣는다.

2.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김치 반 포기를 넣고, 국물이 거의 졸아들 때까지 푹 끓인다.


이 간단한 요리 과정을 거치고 나면 누구나 특별한 재료 없이도 맛 좋은 김치찜을 완성할 수 있다. 김치 꼬다리만 가위로 자르고, 기다란 배춧잎을 통째로 집어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된다. 개운하고 구수한 김치찜 냄새가 집 안 가득히 퍼지는 동안, 우리는 복잡한 고민을 잠시 내려두기로 한다.


누가 봐도 옳은 결정보다 결정 그 자체가 자부심으로 남을 때도 있다. 별 게 없어도 맛있게 완성된 김치찜처럼, 정확한 레시피가 없어도 요리하는 시간을 즐기다 보면 가능해지는 일이다. 무조건 잘 될 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지는 대신, 모든 과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겪어 보기로 한다.


우리는 종종 너무나 쉽게 심각해진다. 그래서 더욱 여유가 필요할지 모른다. 제법 차분한 태도와 적당히 진중한 생각, 때로는 과할 정도의 유쾌함이. 어른의 모습이란 원래 이런 것들의 총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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