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 우리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 (20장)

by 이도화
“한 집 안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던 시절.”

인생은 어쩌면
뒤늦게 마음이 따라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상으로 내려온 뒤,
내 하루에는 처음으로 반복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삶.


저녁이 되면
가족들과 같은 식탁에 앉았다.


그 평범한 풍경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고
이상하리만큼 고마웠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살던 나에게
그 일정한 하루는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같았다.


그 무렵
남편은 다시 서울 본사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해외 근무 이야기도
이제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면
어머니가 계실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 선택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평온한 저녁들이 이어졌다.


큰아이는 숙제를 하고 있었고
작은아이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의 숨소리가
집 안에 고르게 퍼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계시던 단촐하고 소박했던 방."

그해
여든이 되신 어머니의 걸음이
갑자기 불편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오래 앓아 온
당뇨 합병증으로
뼈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거실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약해진 뼈가
더 이상 몸을 버티지 못해
고관절이 내려앉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마지막 시간은
병실이 아니라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병원에 오래 모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익숙한 방에서,
평생을 보아 온 천장 아래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셨다.


어머니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어머니의 숨은 점점 짧아졌다.


어머니의 숨이
아주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방 안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에서 내려놓아지는 것처럼.


어머니는
마치 잠이 드신 것처럼
평온하게 숨을 거두셨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다른 자식들은 아직 오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며느리인 내가 지키게 되었다.


그 후에야
자식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집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마치셨다.


어쩌면 어머니는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삶을 내려놓고 싶으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와 일곱 해를 살다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마음 편히
다음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시간을 택해 떠나신 것은 아닐까 하고.


어머니의 삶은
막내아들을 향해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았다.
그 사랑 하나로
거친 세월을 건너오신 분이었다.


힘들고 모질었던 인생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제 어머니는
벽제 용미리에 잠들어 계신다.


어머니는
아들을 참 많이 사랑하셨고
남편 역시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남편은 한동안
몸과 마음을 함께 추스르지 못했다.


우리는 늘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길을 고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뒤돌아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시간이 남긴 마음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앞을 보며 살아가지만
이해는 늘 뒤늦게 찾아온다.


인생은
어쩌면 거창한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하루들이
조용히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던 저녁,
집 안에 흐르던 숨소리,
아무 일 없이 지나가던 하루들.


그것들이
사실은 가장 눈부신 시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지나가는 하루를 붙잡듯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말해 본다.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 작가 노트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시작한 글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온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상직으로 전환한 뒤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차리고,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식탁에 앉던 날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저는 조금씩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왔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길을 고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조용히 마음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인생은 완벽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제가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배운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마치며 저는 또 다른 시간을 떠올립니다.


가족과 함께 보냈던 20년의 해외 생활입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며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배운 삶의 또 다른 모습들을 다음 책에 담아 보려 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모든 분들을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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