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내 삶의 리듬이 바뀌던 계절

지상으로 내려온 시간 (19장)

by 이도화
"내 삶의 리듬을 바뀌던 계절."

내가 공부를 하던 그 시절,
남편은 지방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비행을 나가던 날이면
아이들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겨야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두 어른의 손에서 자랐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현관 앞에 서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장면은 그 무렵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기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다.


객실승무부 과장을 모집한다는
사내 공고가 올라온 것이다.
비행이 아닌 지상 근무 자리였다.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그 선택이
내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는
미루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지원했다.


2000년 가을,
나는 처음으로 지상 근무를 시작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뒤
내 하루에는 처음으로 ‘반복’이 생겼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삶.


비행 스케줄에 맞춰
잘게 쪼개지던 하루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하루였다.


낯설었지만
마음 한편이 이상하리만큼 놓였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과 같은 식탁에 앉았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숟가락이 움직였고
밥그릇이 비워졌다.


그 평범한 저녁이
그때의 나에게는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나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드 불빛 아래 노트를 펼치고
하루의 끝을 공부로 채웠다.


그 시간은
내가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이기 전에,
며느리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그저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


나는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쌓아 갔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돌이켜 보면
사람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가 오래 머물렀던 시간들인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남편은 다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해외 근무 이야기도
이제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공부는
훗날의 삶을 위해
조용히 준비되고 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제 삶의 한 시기를 조용히 돌아보며 기록한 글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공부를 이어 가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어 가던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들은 결코 혼자서 지나온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도움과 기다림 속에서 하루하루 쌓여 간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저를 다시 다음 날로 데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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