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빈자리의 크기를 안다.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오고, 시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7개월이라는 시간 안에서 계절이 바뀌었고, 생물이 태어나고 소멸하면서 제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유일하게 나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로.
괜찮아,라는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 의심도 없이 그날의 전화는 평소보다 더 빨리 끝났다. 늘 나에게는 다음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다음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태어나 처음으로 내게 그다음을 주지 않은 신을 끝없이 원망하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통화 기록은 2022년 8월에서 멈춰 있다. 평생을 써온 일기는 5월에서, 빼곡히 기록한 달력은 6월에서 생을 다하였다.
편의점 앞 정류장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늘 언제 오냐고 재촉하던 그가 고작 15보를 힘겹게 걸어 엘리베이터까지만 나와 배웅할 때, 바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한 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던 그가 무조건 차를 타고 움직일 거라고 했을 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줬던 그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가고 싶은 음식점을 꼭 가야겠다고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는 거대한 빈자리의 무게에 짓눌리고 나서야 그의 변화가 그의 달력이 멈춘 작년 6월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최근에 다른 가족으로부터 그가 그 시기 즈음 그만 놓아 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는 왜 그걸 이제서야 말하냐고 전해준 이를 핀잔하며 나의 무거운 감정을 그에게 던져 버리고 말았다.
그를 떠올리면, 아주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오후 3시 즈음, 햇살이 따스하게 품고 있는 교실과 집에 갈 생각에 신난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게 그려진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수다를 달래면서 종종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흰 봉투를 전달하곤 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 먹으라는 한 문장과 천 원짜리 몇 장. 부러워하는 또래들의 시선에 의기양양해진 나는 뜨거운 그의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무얼 사도 꼭 하나씩 더 사서, 하나씩 더 만들어서 경비 아저씨께 내밀었던 그의 품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현실을 조금씩이라도 받아들여야만 함을 깨달은 그날부터, 나는 작년 6월의 그와 함께 한 마지막 식사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떠올리다가, 그날 유난히 심했던 그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던 철없는 나를 원망한다. 평소 좋아하던 해장국집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서 가장 좋아했던 자리에 앉아 멀리 무엇인가를 응시했던 그. 어딘가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흐릿한 두 눈에 햇살이 내려앉았던 그 장면이 계속 꺼내진다. 그는 내리쬐는 햇살과 제일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누릴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 순간 알았을 것이다. 행복했던 생의 순간들, 떠난 뒤의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며 어쩌면 그는 마음으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 사이에서 얼마나 외롭고 사무쳤을까. 나는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그가 부렸던 고집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던 그의 마지막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날도 여전히 그는 많은 반찬을 내 앞에 두고, 평소처럼 더 많이 먹으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저 먹기만 했다.
두 눈을 더 이상 마주치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그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겨우 꺼낸 나는 가빠지는 숨소리 속에서 그가 평생을 믿어 온 신에게 빌었고, 서서히 사라지는 숨소리 속에서 그 신을 원망했다.
그가 좋아하던 책상의 서랍에는 여전히 그 시절 내가 그에게 적었던 작고 어린 글자들이 있다.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여전히 안전하게, 온전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해서 지키고 있는 작고 여린 글자들을 내려다보며 이제 와서야 나를 향한 그의 바람을 생각해 보는 나는 여전히 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