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공간

이진아 기념도서관 (건축가 한형우)

by 아혜

자식을 잃은 부모, 그 심정이 담긴 공간


남편을 잃은 아내를 ‘과부’라고 한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라고 하고,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한다. 그러면 자식을 잃은 부모는 뭐라고 말할까?

그 비통한 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단어도 없는 건 아닐까?

모원단장(母猿斷腸),

중국 진나라 병사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원숭이 한 마리가 슬피 울며 배를 향해 달려왔다. 온 힘을 다해 배를 쫒던 원숭이는 마침내 배 위로 뛰어올랐지만 이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원숭이의 배가 이상했다. 원숭이 배를 갈라본 병사들은 깜짝 놀랐다.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사연인 즉,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를 한 마리를 잡아 배에 올랐고, 이를 안 어미 원숭이는 자식을 되찾기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지도 모르고 죽을힘을 다해 배를 쫓은 것이다.

이것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다. 아니 한참 부족하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보다 더한 애통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비통한 부모의 심정이 담긴 공간이 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함께한 독립문공원 뒤편에 10년의 시간이 담긴 빨간 벽돌 도서관이 있다. 서대문구립 이진아 기념도서관. 이 공간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이진아’가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을 던져주는 공간이다.


2003년 6월 2일 새벽, 전화가 울렸지. 한 통을 받은 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둘째 딸 진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딸 진아를 만나고 온 지 석 달이 지난날이었다. 진아의 나이 겨우 23살이었다. 자신의 회사명도 두 딸들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을 만큼 딸들에 대한 사랑이 컸던 딸바보 아버지에게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항상 미안했다. 의류수출업체를 운행하며 아버지는 오롯이 일에 집중하며 살기 바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은 애통함에 내려앉았다. 진아를 잃고 그 미안함은 더 커졌다. 아버지는 진아를 위해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딸을 가슴에 묻는 대신 별이 된 딸의 이름이 세상에 영원히 남아있길 바랐다. 진아는 평소 책을 사랑했던 아이다. 아버지와 가족들은 사재 50억 원을 서울시와 자치구에 기증해 도서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 소식을 듣고 여러 구청에서 관심을 보였다.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자치구들 중 아버지가 고른 곳은 구 서대문 형무소와 마주한 독립공원 자락,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었다.

현상공모가 시작됐다. 현 호서대 건축학과 교수 한형우 건축가. 그의 손에 도서관 설계가 맡겨졌다. 생의 첫 현상공모에 당선된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딸을 잃은 가족의 그리움을 공간에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


‘이진아’를 담아내다.

적지 않은 도서관 건립 액수를 기증하고도 아버지와 가족들이 원한 것은 딱하나였다. 딸의 이름 석 자를 붙여달라는 것. 딸만을 위한 추모공간이 아닌 진아처럼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쉼터 공간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도서관 정식 명칭을 ‘서대문구립 이진아 기념도서관’으로 정했다. 건축가는 외벽 현판 하나에도 세심하게 접근했다. ‘이진아’라는 글씨체를 고민하던 건축가는 진아가 살아생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접하게 된다.

편지 마지막 줄에 쓰인 ‘딸 진아 올림.’ 도서관 현판의 ‘이진아’라는 이 세 글자는 진아의 친필을 본떠 제작했다.


서대문 형무소의 높다란 담장을 고려한 외장재료 – 적벽돌

도서관이 건립될 부지를 찾은 건축가의 눈에 서대문형무소의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200m 길이와 5m 높이의 기존 형무소 적색 벽돌 담장은 그 형태만으로도 형무소라는 장소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담장에는 백화가 잔뜩 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진아 도서관은 이러한 주변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재료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건축가는 외장재료로 기존 형무소와 담장, 그리고 주변 자연에 대한 고려와 함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모되어가는 자료로 벽돌(점토벽돌)과 나무를 선택했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되고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재료로 벽돌과 나무를 골랐다. 기존 담장과 인왕산을 강조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와 함께 건물의 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건축가는 ‘빛과 그림자’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래서 벽돌을 4개마다 한 개씩 3cm 튀어나오게 쌓아 올림으로써 하루 24시간에서 4계절까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의 표정을 담아냈다. 여름에는 벽돌 4장까지 그림자가 비치고 겨울엔 튀어나온 벽돌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기도 한다. 딸이 떠나고 흐르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낸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였다.


외부공간과의 관계

건축가는 건물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건물이 주변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공간을 고민했다. 도서관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진아 아버지는 건축가에게 도서관과 함께 주변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은퇴하면 하루 용돈 3만 원 받아 지하철 타고 도서관에 와서 공원에 놀러 나온 아이들 과자 사주고 도서관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 주우며 살려합니다. 내 딸 진아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하늘에서 좋아할 겁니다.”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주민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공공 도서관으로 그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도로와 공원의 바닥은 2.4m 차이가 난다. 기존 지형을 이용하여 전면도로에서의 진입과 공원에서의 진입을 연결하는 경사로를 설치했다. 진입로에서 내부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내부 공간 (1층 로비 / 천창/ 내부계단)

4F | 종합자료실Ⅱ / 휴게 테라스

3F | 종합자료실 / 문화창작실 / 휴게실

2F | 전자정보열람실 / 다문화자료실 / 도예공방

1F | 모자열람실 / 어린이열람실 / 안내데스크

B1 | 다목적실/ 서고


건축가는 도서관의 내부 공간 구조 또한 담장 건너의 구 서대문 형무소의 공간에서 유추했다. 형무소라는 공간이 감옥의 감시와 통제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감시관(?)이 수감자를 쉽게 감시할 수 있게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내부구조를 가졌다. 이에 영감을 얻어 주변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공공도서관의 구조로 접목시켰다. 즉, 같은 평면 형태라도 그 스케일과 햇빛에 의한 직사광, 간접광, 그림자 등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층에서 시선 교환이 가능하게 했다. 열려 있는 도서관을 통해 이용객들의 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문화의 공간을 조성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환하게 웃고 있는 진아의 모습이 보인다. 불의의 사고 석 달 전, 아버지는 뉴욕 출장길에 미국 유학 중인 딸 진아와 함께 2박 3일을 함께 보내며 찍은 사진에서 본떠 동판을 만들었다. 항상 바빴던 아버지는 딸과의 데이트는커녕 제대로 된 부녀 사진도 변변치 않았다. 진아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진아의 카메라에서 이 사진이 나오자 아버지는 자신의 얼굴을 빼고 진아의 사진을 사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2개 레벨의 홀이 전개되는데 건물 로비의 역할과 어린이도서관, 어린이 전자정보열람실, 놀이방을 연결하는 호로 구분된다. 이 홀을 통해 내부 유리 계단에 이르는 연속된 공간이 연출됐다. 건축가는 열린 도서관 밝은 도서관을 꿈꿨다. 하지만 도서관 바로 앞에 2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하루에 2시간밖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천창을 만들었다. 내부 유리 계단을 통해 4개 층을 열린 공간으로 연출했다. 하지만 조명 설치가 쉽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층에 벽면 조명을 설치해 각 층별 밝기를 조절할 수 있게 설계했다.


각각의 내부 공간에도 그 용도에 맞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진아 도서관에는 독서실 같이 칸막이로 된 열람실이 없다. 입시나 취업을 위한 자습 공간이 아닌 누구나 찾아와 편안하게 ‘책을 읽는 공간’이길 바랐다.

1층 모자 열람실은 방바닥으로 설계해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편안하게 신발을 벗고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3~4층 종합열람실에는 쾌적한 독서공간을 위해 2개 층의 오픈해 높은 천장을 두고 한쪽 벽은 넓은 유리창으로 채웠다. 독서를 하다 눈이 피로하면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책상 별로 개인 스탠드를 설치하고 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도서관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공간은 3,4층에 위치한 휴게실이다. 4층에는 인왕산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 테리스를 조성했다. 인왕산과 독립공원, 서대문 역사박물관 등 주변 경관을 내부로 유입한다. 자연과 함께 조금 더 편안한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84장의 사진들

준공식 날이었다. 진아가 살아있었다면 25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2005년 9월 15일. 한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조용히 CD 한 장과 편지 하나를 건네고 사라진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CD를 확인한 아버지와 건축가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CD에는 84장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터파기 작업부터 도서관 건물이 한 층 한 층 올라가고 완성되는 모습을 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1년 여 동안 기록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편지에 이렇게 써져 있었다.

“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 - 세진 엄마-”

건축가는 몇 달 후 세진 엄마를 찾기 위해 사진이 찍힌 각도를 보고 아파트 한 동의 초인종을 일일이 눌러야 했다. 마침내 만난 세진 엄마는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도서관에 대한 사연을 듣고 도서관이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사진들이 조금이나마 진아 양의 가족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면 그 걸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개관한 지 10여 년이 넘은 이진아 도서관은 한 달에 5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공간이다. 작아 보여도 인문학, 점자도서 등 보유한 책만 11만 여권의 책과 함께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지속적으로 그 기능이 진화하고 있다. 아버지는 별이 된 딸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영원히 남아있길 바랐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과 소망이 시간의 흐림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 그 속에 담긴 그리움은 기쁨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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