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3년 전 이맘때 즈음, <오늘의 오아시스>라는 주간 에세이 구독지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처음 글을 쓰자고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평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떠오르는 생각들도 많았기에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지인들을 모았고, 그 중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지인이 홍보를 해서 구독자가 깨나 모였다. 구독지는 PDF 파일로 편집하여 일요일 밤 10시에 이메일로 발송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제가 정해지고 나면 며칠 동안 시작도 못하고 고민만 했다. 어떤 글을 쓸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읽는 사람이 유익하다고 느낄까를 고민하다 보면 글이 조잡해지기 일쑤였다.
'오아시스’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일요일 밤,잠들기 전에 내일은 어쩌면 조금 더 달콤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희망하며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막상 작성된 글은 다소 아프고 힘든 이야기가 많았다. 내 글이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오늘의 오아시스> 팀 작가들도 나와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더 잘 쓰고 싶고, 더 좋은 글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때 작가 중 한 명이 ‘진심을 담은 글이라면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모두 동의했다. 수려한 글이 아니더라도, 나의 솔직한 마음을 담기로 했다.
여기서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표현이 어색한 사람이다. 잘 웃고, 잘 들어주지만 막상 내 마음을 표현하라고 하면, 그게 그렇게 쑥스럽다.
그러나 글을 쓸 때 만큼은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내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꺼려져 한 구석에 묵혀뒀던 내 이야기는 텍스트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그러던 중 8월 둘째 주 <오늘의 오아시스>에 실린 <슬픔 위에 지은 행복도 행복이다>를 읽은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와 비슷한 이별을 겪은 그는 ‘이게 운명이라고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은 게... 굉장히 좋고.. 나한테 필요한 글이었어. 위로가 됐어. 고마워.’하며 눈물을 훔쳤다. 친구의 연락은 바로 그 ‘진심이 통한 순간’이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인데, 세상이 너를 몰라주는 것 같아 안타까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알아줄 의무도 없고, 세상의 기준에서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다만 바로 옆에 있는 네가 내게 ‘너는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아이유의 ‘마음’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잘해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노래 가사처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정성스럽게 대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언젠가 닿을 그곳을 위해, 그리고 그곳에 있을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