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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Jan 15. 2024

설렘으로 마주한 설경

위례를 중심으로

설렘으로 마주한 설경

      

            

눈을 기다리고 있다.

일기예보는 24년 1월 9일부터 다음 날까지 눈이 계속 내릴 것이라고 했다. 새벽부터 많은 눈이 내린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혹! 함박눈일까?’ 눈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눈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9일 새벽, 내리는 눈은 비와 눈이 섞인 진눈깨비 모습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려앉은 거리에 한 발, 한 발 누군가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고요와 정적을 동반한 발자국은 흡사 ‘내가 누구게!’하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진눈깨비는 어느새 커다란 함박눈이 되었다.     

나뭇가지에도, 거리에도, 이정표 위에도, 건물 옥상에도, 아파트로 이어진 빌딩 숲 위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갔다. 함박눈이 온 세상을 순식간에 하얀 백설로 물들였다. 순간 송파에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장소를 선택해 송파의 설경, 그 자체의 참모습을 보고 느끼고 담고자 했다.     

‘송파의 설경’으로 담아내고자 선정한 장소는 먼저, ‘위례’에서 버스를 타고 가며 오금공원과 ‘잠실 나루’를 아우르는 것이다. 다음, 두 번째는 잠실 송파구청, 그 지점을 순환하여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장지역에 도착한다. 장지역 주변의 설경을 눈에 담고, 장지천을 따라 이어진 송파 둘레길을 걸어, 다시 위례호수공원과 마주한다. 마지막 휴먼링을 귀착점으로 송파에 면한 설경을 음미하는 여정을 세우고 눈길에 첫발을 내디었다.      

시간과 더불어 대설로 변해가는 눈을 맞으며 걸었다. 선정한 공간적 배경들이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하얀 함박눈이 온 하늘을 더할 수 없이 고요한 흰색으로 덮어가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눈이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아름다움이었다. 눈은 순간 세상에 다시 없을 마법과 환상의 세계로 마음을 이끌었다.      

3313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른 바로 그 순간 ‘오르한 파묵’의 <눈>(Snow)의 첫 문장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문장을 소리 없이 입으로 달막거렸다.     

‘The Silence of Snow’, thought the man sitting just behind the bus driver. If this were the beginning of a poem, he would have called the thing he felt inside him the silence of snow.

눈의 침묵, 버스 운전사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남자는 생각했다. 혹 이것이 시의 시작이라면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눈의 고요함이라고 불렀을 것이다.(번역 Michelle Lyu)     

버스는 ‘위례’, ‘거여’, ‘오금공원’을 거쳐 ‘잠실나루’를 지나고 있다. ‘송파구청’까지 이르는 내내 하늘에서 내리는 흰 눈을 직시하며, ‘The Silence of Snow’ 눈의 침묵, 눈의 고요함으로 언급한 파묵의 인식이 가슴에 깊게 파고들었다.


가슴에 눈의 고요한 정적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보며 이러한 상황이 한 편의 시의 시작이라면 눈의 침묵을 통해 자신 안에서 느끼고 있는 그것이 바로 시이자 ‘삶’이라고 여겨졌다. 차창을 통해 ‘눈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환희, 그 자체였다.     

침묵하는 눈은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한 편의 시가 되어 모든 장소에서 연출되는 설경을 품게 했다. 발자국을 만들며 눈길을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계속 경쾌하게 울렸다. 모자를 쓴 머리 위로 ‘착 차르르락...’, ‘착 차르르락...’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지천 흐르는 물 위로 내리고 있는 흰 눈의 정중한 행렬이 고요와 정적을 품어내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눈사람 만들래?’<Do you want to build a Snow Man?> 하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내리는 눈을 앙증맞은 조그만 두 손으로 받으며, 두 팔 벌려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하얀 하늘을 넓게 열었다. 눈 집게 속에서 병아리, 눈사람, 눈공(snowball)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 하늘로 퍼졌다. 동심을 불러내는 아이들 모습이 순간 설경이 주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내리는 눈을 마주하기 위해 자신의 분신 같은 충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 눈을 음미하며 홀로 산책하는 사람, 부부, 친구, 아이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설경 안에 들어왔다. 우산을 쓴 사람들, 우산 없이 그저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람들, 그냥 그대로 눈을 맞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설경을 가슴에 담았다.      

눈으로 덮인 오금공원의 설경은 겨울 왕국을 연상케 했다. 누군가는 겨울 왕국의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여지 없이 또 다른 누군가는 눈이 멈춘 뒤에 교통과 발길을 걱정했다. 모두 다 옳다. 그러나 한순간이라도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축복으로 볼 수 있는 환희와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파묵이 전해준 대로 흰 눈이 건네는 한 편의 시를 경험하게 된다. 모두 한 번 눈 내리는 모습을 음미하며 ‘하얀 눈이 이끄는 대로 한순간이라도 맡겨 보면 어떨까?’ 하는 낭만적 사념에 사로잡힌다.      

눈을 조우하며 위례호수공원을 따라 걷고, 오금공원을 지나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송파구청 앞 건널목에 선다. 무수한 발길에 흔적도 없이 내리는 순간 곧 사라져 버리는 내리는 눈을 아쉬움으로 바라본다. 내리는 눈을 피하고자 사람들이 쓴 우산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송파 잠실의 어느 한 공간, 그 건널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설경의 장면을 담아내는 여정은 이제 장지역을 지척에 두고 눈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지키며 서 있는 마당놀이 돌기둥 앞에 이른다. 장지천을 수놓은 눈과 친구 되어 걷는 발걸음은 벌써 위례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눈이 좋아 하얀 밤을 가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제자리로 돌아와, 밤을 하얗게 밝히는 눈과 다시 재회하는 바로 그 순간이 생의 가장 중요한 한순간이 되어 진하고 깊은 환희를 만끽하게 한다.     

송파의 아름답고 멋진 설경을 간직하게 한 위례호수공원, 휴먼링, 트램로를 위시하여 오금공원, 잠실나루 인근, 장지역에 면한 장지천이 송파의 공간인 것은 구민의 한 사람으로 상당히 큰 행운이다. 눈과의 조우를 이뤄내는 장소, 물체, 시공간을 아우르며 눈을 맞으며 둘레길 안내도가 서 있다. 또 하염없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설경 속 미완의 놀이터는 고요를 더한다. 그 장소들을 통해 보고 알고 느끼게 된 설경은 24년 새로이 시작하는 항해에 힘과 위안을 준다.     

눈 위에 또렷이 새겨지는 발자국과 눈이 내리는 하얀 밤을 새기듯 밝히는 가로등 불빛을 타고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 눈, 눈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더욱 고혹적으로 빛을 밝힌다. 가로등 불빛을 타고 내리는 눈의 향연과 이 모두를 담은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얀 밤을 열며 위례의 네온 등이 순간 다채롭게 켜진다.      

형형색색 네온 등 아래로 멀리,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하얀 눈길이 ‘설경 속으로 한 번 들어와 보실래요!’ 유혹하며 계속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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