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관한 촌평: ep1. 무궁화 꽃이 피던 날
기훈(이정재 분)은 3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지금은 단칸방에서 노모와 힘겨운 삶을 버티는 중이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이혼한 아내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이다. 그러나 경제력이 변변치 않은 기훈은 양육권마저 아내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무릇 사랑의 크기는 양육 능력을 앞지를 수 없는 탓이다. 그리하여 기훈은 이따금 아내와 합의한 날에 딸을 만나 떡볶이나 사주는 것으로 <제한된 기쁨>을 누리는 데 만족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훈의 삶이 애잔한 연민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비극은 <하마르티아>로 인한 운명론적 비극이기보다 스스로 초래한 자승자박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테면 1화 초반에서 보이는 그의 대책 없고 비합리적인 행동들은 실로 우리의 탄식을 자아낸다. 그는 노모가 힘겹게 벌어온 쌈짓돈으로 도박을 하고, 또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건넨 이상한 제안--딱지치기--을 덥석 문다. "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 아니에요", 라는 기훈의 말은 그의 어리숙하고 한심한 태도를 지켜보는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고해성사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훈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꽤나 당연하다. 1화의 내용들 모두 기훈이 자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지금의 사태를 개선할 수 없다는 그의 자조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고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훈은 푼돈으로 부지하는 대리보다 난생 처음 보는 말의 뜀박질에, 확실하지만 소박한 만 원짜리 선물보다는 대운이 깃들지도 모르는 인형뽑기의 행운에 기대를 건다. 오직 <게임>을 통해서만 삶을 뒤집을 수 있다고 그는 믿는 것이다.
마침내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참가자들이 모여 게임이 시작된다. 참가자는 총 456명, 게임 구성은 총 6개, 그들이 치르는 첫 번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사실 첫 번째 게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사실은 꽤나 고무적이다. 잘 알려져있듯 이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한 명의 술래와, 여러 명의 게임 참여자로 구성된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동안 참가자들은 술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술래가 뒤돌아보는 순간 참여자들은 가만히 멈춰 서야 한다. 이는 곧 <신체>의 통제를 의미한다. 익히 알려져있듯, 미셸 푸코에 따르면 <권력>의 대상 목표는 우리의 신체다. 권력은 우리의 신체를 교묘하게 잠식해나감으로써 신체에 대한 통제를 넘어 <우리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초등학교 아침 조회 시간의 국민체조가 사라진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오징어 게임의 참여자들은 생각보다도 빨리 권력에 순응하게 된다. 게임에서 맨 처음 사망자가 발생했을 땐 다들 장난인 줄만 알았다. 잠시 후 죽음이 진실로 드러나는 순간, 즉 불합리한 권력의 실체가 증명되는 순간 많은 이들은 게임을 부정하고 달아나려 시도한다. 여기서 이탈자들의 무차별적인 죽음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꼼짝않고 서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다. 이제 권력은 그들의 신체를 휘어잡았고, 그들은 기꺼이 신체를 권력에 내맡긴다. 물론 이 어이없는 공모의 긴장 관계가 좀 더 결속되기 위해선 후속 절차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기야 아직 게임은 많이 남았다.
*사족: 게임의 말미에 죽음의 위기에 처한 기훈이 자본주의 사회의 최약자 중 하나로 여겨지는 외국인노동자로부터 도움을 받는 장면을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계급적 사고 속에서, 오로지 <수혜자>로만 여겨지던 인물을 <기여자>로 내세움으로써 계급적 사고의 지위를 흔들고자 하는 시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