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오늘 챕터의 제목은 '늘 자책하는 내가 나조차 버거울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딱 제 이야기입니다. 제 특기는 자책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저는 자책을 참 잘합니다. 어쩌면 자책 방면에서는 이두형작가님보다 전문가일지도 모릅니다. (이건 농담입니다)
부당한 상황도 참 잘(?) 참고, 소소한 짜증이나 불행도 꽤나 잘 넘길 수 있습니다. 큰 사건은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지만,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들은 어차피 주변 상황일 뿐 나 자신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나 자신'이 잘못한 부분, 실수한 부분, 놓친 부분, 미숙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발견하면 자책과 함께 수치심을 잘 느낍니다. 수치심도 정확한 워딩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 특유의 그 감정과 감각이 있습니다. 등에 땀이 갑자기 솟아나며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기분. 누군가에게 빨리 '잘못한 거 아니야'라고 확인받고 싶다가,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내 잘못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이미 아는 그 기분.
스스로를 자책할 때 주변의 반응은 3가지 방향 정도로 나뉩니다.
1. 위로형 :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위로
2. 반성형 : 이 기회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다시 그러지 않도록 하자는 조언
3. 문제 해결형 : 그 상황이 벌어진 이유와 상황 파악 후 해결 방안 고민
여러분은 어떤 유형이 가장 도움이 되시나요?
저는 요새는 상담에서도 그 기분에 대한 것을 종종 다루고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기분에 휩싸일 때의 그 감각이 너무 싫거든요. 저는 2,3 유형을 함께 하는 편입니다. 저는 인지와 사고가 중요한 T(사고형)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분석하고, 반성하고 납득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차라리 빠르게 인정하고 해결 방안을 찾든지, 혼자 반성을 하며 소화하든지 무엇이든 둘 중 하나로 행동을 옮기곤 합니다. 1번이 공감과 위로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제 잘못을 외면하고 회피한 것 같아 그 고통이 더 오래가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러다가 이 책에서 아래의 인용 문구를 만나고 또 하나 더 배웠습니다.
한 번쯤은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한 발 물러나 살펴보면 좋겠다. 당신은 스스로 부족함을 평가하고 다그치고 있는가. 혹은 스스로의 아픔을 보듬는 중인가. 두 관점에 옳고 그름은 없다. 하나가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떻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좋은지. 무엇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인지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단지 어떤 관점이 당신을 살게 하며, 당신의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가. 나는 여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58.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와닿은 게 이런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느 한 방법이 답은 아니라는 것.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
우리가 자책할 때에는 문제 상황을 느낄 때이고, 이러한 자책은 어찌 보면 자신의 본질을 건드리는 고통입니다. 외부나 환경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자아에 더 상처를 주기 쉬운 것입니다.
영화나 웹툰을 보면 총이나 칼을 맞고 고통을 참으며 스스로 총알이나 칼을 뽑고, 붕대도 감는 인물들의 장면이 나옵니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당연히 일반인인 우리에게는 어렵지 않을까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입으면 일단 내 고통이 너무 커서 주변 상황 판단을 객관적으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도움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내게 박힌 칼을 뽑아주었지만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칼이 박혀있다면 뽑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기'인 것 같습니다. 나를 거리 두고 관찰자처럼 바라보는 것이 여러 상황에서 통용되겠지만, 특히 '자책'이라는 감정과 엮어서 이유는, 자책이라는 다른 감정에 비해 개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사례와 함께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어제도 자책을 했습니다.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날카로운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어제 올라온 글(불행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기)이 사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브런치 시스템이 낯설어서 프롤로그 이후 첫 글을 쓰고 예약글로 설정을 해두었더라고요.. 물론 그때는 제가 이렇게 매일 글을 쓸 줄 몰랐기도 했지만 전 사실 어제의 그 글이 시기에 맞춰서 이미 일주일 전에 업로드된 줄 알았습니다..;; 어제 지인과의 만남 중 갑자기 게시 알림이 떠서 당황했습니다. 어젯밤에 집에 와서 글을 쓸 예정이었는데 업로드가 되었다니...? 이것은 시스템 조작에 익숙하지 않았던 제 '실수'였습니다. (근데 다들 잘 모르셨죠..? ^^)
'타책'이란 단어가 없고 '자책'만 있는 것은 타인도 나를 책망할 정도의 잘못이라면 그것은 이미 자책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잘못'이나 '문제상황'과 그에 따른 '반성'과 '성찰'이라고 해야 옳지요. 이 사례도 엄밀히 말하면 거의 저만 아는 실수이기는 하지만, 제 '실수'와 '잘못'에 해당하니 해결 가능합니다. 바로 문제 상황을 찾아 반성을 하고, 그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브런치 시스템에 대해 연구도 해보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하듯이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으로 무난하게 자책의 감정을 흘려보냈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자책 같습니다. 앞에서 자책이 개인적인 감정이다라는 말과 연결되는데요. 이 자책은 보통 '쓸데없이'라는 말과 함께 다닙니다. 자책의 사연을 듣고 나면 '왜 그렇게 쓸데없이 자책을 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지거든요. 어쩌면 그게 위에서 말한 1번 위로 유형의 조언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잊어버리라는 것.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일지도 모르지요.
이 유형에서도 대다수는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등의 가벼운 자책이고 그럴 때는 잊어버리는 게 가능하기도 합니다. 진짜 못 참을 때에는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사과를 하기도 하고, 그럼 보통 기억을 못 했다고 하기도 하고, 사과를 잘 받아주시기도 하지요. (제 주변의 좋은 분들 감사합니다)
그러나 조금 큰 일에서는 그게 아닌지 맞는지 판단도 잘 되지 않고, 해결 방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아이를 유산한 것이 그랬습니다. 자연 유산의 확률이 10%라는 말. 내가 그 10명 중 한 명이 아닐 이유도 없다고 스스로를 되뇌며 조금은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아직 전부 극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개월이 지나 다시 아이를 준비하는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때 내가 너무 커피를 많이 마셨었나? 디카페인으로 마시긴 했지만 안 좋았나? 치킨 피자를 괜히 먹었나? 너무 덥고 무리되게 걸어 다니고 돌아다녔나? 운동을 하지 말걸 그랬나? 혹은 오히려 더 운동을 해서 살이 많이 찌지 않았다면 아이도 건강했을까?
수도 없는 물음표들에는 해결 방안도 없었고, 네 잘못이라는 위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때 필요했고 도움을 주었던 게 일단 저에게서 거리 두기였습니다. 수많은 물음표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일단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는 것. 그리고 잠시 물러나서 바라보는 것. 여전히 해결 방안도 없고, 제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완전히 자리 잡지도 못했지만. 바라보면 아프지만 그래도 외면하지 않는 것.
기억 속으로 억지로 묻어버리려 하지도 않고, 울다가 바라보고, 추억으로 웃으며 바라보고, 반성도 해보고, 다음 계획도 나름 세워보고. 간신히 고개 내밀고 숨 쉬는 제가 얼결에 붙잡은 부표 같은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잠시 책도 읽고 글도 쓰다가, 또 그 생각이 떠오르면 하다가, 다른 책도 읽고 글도 쓰다가 반복하는 것. 해녀들의 물질처럼 물음표의 바다에서 수면과 바닷속을 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책과 더불어 상담 선생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어떻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좋은 지. 무엇이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인지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단지 어떤 관점이 당신을 살게 하며, 당신의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가. 나는 여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저는 이 말이 작가님이 제게 건네는 위로 같았습니다. 자신을 위로해야 될 때도 있고,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도 있으니 정답이 없다는 것. 단지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것. 그게 어렵다면 일단 거기에 관심을 두어 보는 것.
아. 어쩌면 내 삶에 필요한 것을 하고 관심을 두어보는 것이 전념인가 싶기도 합니다. 수용이 받아들이는 거라면 전념은 '삶의 고됨을 기꺼이 감수하며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고된 마음에서 눈을 돌려 삶의 가치를 찾는 것. 자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넘어 내 삶을 사랑하고 살게 하는 것을 찾는 것.
저는 글쓰기에 전념하며 제 삶의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못 찾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제 삶에서 머리와 의식이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받아들이게 해 주거든요. 제 글은 제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주기에 쓰지만, 다른 분들께도 혹시나 조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 함께 드는 것을 보면, 이제 조금 살만해졌나 싶기도 합니다.
다 그런 거 아닐까요? 죽을 것 같다 싶다가도 지나면 또 살아지는 거.
자책의 마음이 올라올 때 외면해도, 직면해도, 잊어버려도, 반성해도, 해결방안을 찾아도.
그 무엇이든 다 삶이니까. 오늘을 함께 읽고 살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귀한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