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서문을 지난 이 책의 첫 챕터의 제목은 '당신이 힘든 건 잘못 살아온 탓이 아니다'이고, 인용 문구로 불교의 '삶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으로 인한 괴로움을 선택이다'라는 문구가 함께 나와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축으로 '수용'이라는 핵심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힘든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이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상담을 받으러 가서 정말 자주 하던 말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요. 다만 그게 쉽게 되지 않을 뿐. 그런 제 상황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라는 말로 단숨에 꿰뚫려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죠. 이 책이 지금 저를 살리고 사랑에 빠지게 할 거라는 것을요.
-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1. 신체적 심적 건강 악화, 실직, 경제적 어려움, 대인관계 불화, 직장 부적응...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좋아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진 않는가.
2.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문장에 동의하면서도, 머릿속은 잘 지내지 못하는 대상,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진 않는가.
3. 기분이 편안하거나 활력이 있는 상태가 '정상적인 것', 우울하고 불안하며 힘든 느낌이 드는 상태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진 않는가.
4.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인지, 내 인생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하는 데 무심코 몰두하진 않는가.
5.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은 사치로 느끼며, '힘들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진 않은가.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33.
참고로 저는 다섯 가지 모두 해당되었으며, 심리 상담을 5년 넘게 받으며 조금씩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몇 가지나 해당된다고 느끼시나요..?
제가 처음 지나온 것은 2번 같습니다. 머리로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대상에게 집착하고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는 것. 제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모든 사람이랑 잘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학급 아이들이나 동료 교사와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요. 특히 '잘 지내다'라는 저 막연한 말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잘 지내는 것'인지의 기준이 참 높았거든요.. 지금은 저만의 '잘 지냄'을 찾아 나아가고 있지만, 힘들어하던 그 시기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다음으로 지나는 중인 것은 4번 5번입니다. 저는 T(사고형)이기 때문에 항상 제 문제를 분석하고, 무엇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거야' 이런 말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오래 이어온 상담도 사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제 문제를 알고 해결하고 싶어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이유는 5번 때문이었습니다. 꽤 긴 기간 동안 제 인생 목표가 바로 '행복하진 않아도 되니까 불행하지만 않으면 좋겠다'였거든요. 행복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문제를 빨리 찾아서 해결해서 불행하지만 않게 살아야지. 하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뒤에서 해당 부분에 대한 글을 한번 더 자세히 쓰게 되겠지만, '행복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불행하지 않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도 불행하지 않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막 머리로 '이해'한 정도입니다. 이제는 행복하기 위해 불행도 받아들이고 맞서 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진정한 수용으로 나아가는 중이지요..
1,3은 아직도 좀 어렵습니다. 고통과 행복이 별개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아직 제 '행복'을 잘 모르겠거든요. 불행하지 않기 위해 행복을 미뤄둔 게 꽤 되다 보니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행복했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래서 불행 쪽만 보던 시선을 돌려 제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제 막 찾아가 보고 있지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또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으나, 맛있는 간식만 먹으려고 해도 이미 머릿속에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비싸고 몸에 안 좋은 것을..'이라는 문구가 먼저 떠올라 버리니까요...
수용은 억지로 받아들이기, 인정하기가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노여움과 슬픔도 존재한다. 내 삶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좌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 것'이 수용이다.
- <불완전한 삶에 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이두형 p.32.
'수용'은 남이 시킨다고 되지도 않고, 머리로 가르치고 말로 이해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님이 표현하셨듯이 결국 자신이 '깨닫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지요. 머리로 말로 조금 이해한 것을 깨달음으로 까지 나아가기 위해서,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제 삶의 기쁨도, 즐거움도, 노여움도, 슬픔은 선택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보려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함께 가요.
결국 혼자 걸어야만 하는 길이지만,
각자의 길도 모두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 조금 덜 힘들게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시간 내어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