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최선'의 문제

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by 예그림

오늘 챕터는 '다 잘될 거야'라는 억지 긍정 대신에 그저 최선인 하루를 살아내자고 말하는 챕터이다. 내가 이 책에 가장 끌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긍정적 사고 대신에 그냥 슬픔과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름 큰 슬픔과 고통을 지나온 지금. 이 책을 읽은 한 달 전과는 다르게 다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면접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지원자의 진심이 아니다. 사랑이 간절하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세상일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진행된다면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고 인생이 이루어진 원리가 그렇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60.



'진심은 통한다',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주문도 '다 잘될 거야'만큼이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주문이다. 이전 글에도 쓴 적 있지만, 진심은 통한다거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실패한 사람들을 진심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진심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진심'과 '최선'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먼저 첫째는 너무 개인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는 것이다. 좀 길지만 내 솔직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공부하는 모범학생이었다. 학원은 정말 필요한 단과 학원만 다녔고, 인강도 잘 없던 시기이기에 그냥 우직하게 학교 수업을 듣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대학에 갔다. 1 지망 대학은 아니었지만, 나름 수도권에 다들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대학의 국어 교육과에 갔으니 나름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범대의 커트라인이 각 대학마다 꽤나 높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 시험을 5번 봤다. 첫 번째는 붙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고 일단 졸업하면서 한 번 봤다. 재수 때는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봤고, 3수 때는 공부하기 싫고 교사가 되기도 싫어서 방황했고, 3수와 4수 사이에는 대안학교에서 잠시 일하고 뮤지컬 배우가 되어보겠다며 우기기도 했다. 4수 때부터야 '진심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5수에 합격했다.

초수 재수 때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실제로 합격 커트라인에도 매우 멀게 1차에서 바로 탈락했다. 고등학교 때 학원 안 다니고 스스로 공부했다는 자부심, 머리가 꽤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착각도 이때 다 무너졌다. 시험 불합격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이었다. 내가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무너지는 기분.

고2, 고3 때도 반 1,2등을 다투었지만, 대학 때도 30명 정도의 동기들 사이에서 5등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2등으로 조기 졸업을 했다.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을 취업해서 직접 갚으라고 하셨기에,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니 성적이 나왔었다.

왜 임용만 안되는가. 내가 교사에 대해 진심이 아니라서 그런가? 교사가 되고 싶어서 미칠 정도의 진심이 아니면 교사가 될 수 없나? 그럼 난 안 되겠다.라는 게 3수 때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잠시 다른 꿈도 꾸었었지만, 나의 무너진 자존감은 돌아오지 않았고, 대안 학교에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많이 배웠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박봉은 좀 견디기가 힘들었다. 부모님도 나에게 '정말 최선을 다해보지 않고, 패배감을 가지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며, 교사가 되고 나면 그만두어도 되니 임용 시험에 더 도전해 보라고 종용하시기도 했다.

임용 시험에 붙고 나서 내가 더 크게 배운 것은 내가 '진심 최선을 다하는 것'의 기준을 알게 된 것이었다. 초수, 재수 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4수를 하며 노량진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 그룹도 함께해 보니 상대 평가 시험에서 '나의 최선'은 최선이 아니었다. 노량진에 살며 10시간씩 공부하는 친구, 수많은 교재와 스터디를 통해 머릿속 지식을 끊임없이 쌓은 사람들 투성이었다.

인생에서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다시 돌아가도 다시 그 선택을 할 거라고 대부분의 일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기간을 고르라면 바로 이 임용 준비 초수 재수 기간이다. '최선'을 몰라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그때를..


나는 진심과 최선을 다했지만, 객관적으로 그 진심과 최선이 통할 수 있는 정도인지를 먼저 살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슬프지만 경쟁사회에서 내 최선이 다른 사람의 기본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보다 더 나은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진심'과 '최선'의 문제 두 번째는 두 가지가 전략이 아닌 마음만의 단어라는 점이다. 위에서 말한 것을 스스로 반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책의 인용구처럼 최선과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임용 시험을 5수 했다고 하지만 누구나 5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초수나 재수만에 붙는 사람도 많고 그것은 나이나 경험과도 상관없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애매할 수 있지만... 나보다도 교직에 대한 사명감 없이 임용 시험에 붙어서 교사가 된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도 그렇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고 수업시간 태도도 바른데, 시험만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은 학원도 다니고 학원 숙제도 하며 매일 밤까지 공부한다. 그런데 성적이 안 나온다.

지능의 문제도 일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수능과 입시는 지능이 높으면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 끈기와 노력을 보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그 친구들 대다수는 '전략'이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정말 진심을 다해 노력하지만, 자신만의 방향이나 전략이 없는 경우.

상담을 해보면 학원도 다니고 컨설팅도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자신만의 공부방법이나 공부 전략, 공부 진도나 계획 등에 대해 답하지 못했다. 학원 숙제를 했고, 유명하다고 하는 인강을 찾아들었고,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었다. 우리나라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 방법이 잘 안 맞는다. 어찌 보면 그 방법이 맞는 소수의 친구들이 지금 공부를 잘하나 생각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고등학생부터 임용 5수를 할 때까지도 독서실에서 공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도서관도 가끔 가보았지만, 너무 조용한 분위기가 나에게는 맞지 않고 졸렸다. 나는 집에 있는 방에서, 엄마가 TV로 드라마를 볼 때 공부가 잘 되었다. 드라마 대사가 들리다가 몰입되면 어느 순간 들리지 않을 때의 그 쾌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또 내 남편도 공부를 꽤 잘했는데, 남편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못한다. 같이 만나서 공부하러 가도 책을 들고 도서관 복도나 공원을 돌아다니며 눈으로 따라가고, 중얼중얼 입으로 설명하며 공부를 했다. 누군가는 쓰면서 해야 공부가 잘 되고, 누군가는 쓰면서 하는 것이 시간만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다. 누군가는 인강이 도움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시간 낭비이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향이나 전략이 없이 우직하게 앞으로 가기만 한다? 목적지를 찾아가면서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만 나아가면 목적지가 나올 거라고 믿는 사람과 같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최선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우직한 최선을 넘어서 방향과 전략의 설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 책으로 돌아오자면, 허무한 결론일 수 있지만, 정도 높은 최선을 하고 방향과 전략을 설정했어도 안 될 수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4수 때에 나는 정도 높은 최선과 올바른 방향 전략을 가지고 시험을 봤으나 떨어졌다. 변명하자면 그 해 교원 정책의 변화에 따라 뽑는 교사의 수가 줄어들었고, 교사를 많이 뽑는 경기도로 사람이 엄청 몰려서 서울보다 커트라인이 높기도 했다. (물론 사람이 안 몰렸더라고 하더라도 떨어졌을 수 있겠지만) 상황과 맥락은 어쩔 수 없다.


5수에 되었으니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5 수한 다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꼭 붙는 것도 아니다. 난 아직도 함께 스터디하던 예비 선생님들 중에 나만 붙었는데, 내가 너무 뛰어나서 붙은 게 아니라 운의 요소가 컸다고 생각한다.


속이 터지지만, 책의 인용구를 다시 가져오자면 "사실이 그렇고 인생이 이루어진 원리가 그렇다."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있다. 내가 5수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잘 살았을 것이다. 최선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성과 전략에 대해 고민했던 그 과정이 내 삶에 새겨져 있으므로, 무슨 일을 하든 그 경험을 발판 삼아서 성장했을 거라고 믿는다. (5수에 합격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오해한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이므로 해명할 수 없지만) 나는 확신한다. 삶에 관심 있고, 자기 성찰에 관심 있는 나라면, 교사가 아니라도 내 삶을 살면서 상담을 받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또 다른 내 삶을 살았을 거라는 것을.




책에서도, 내 글에서도 결국 한 가지를 반복하는 것 같다.

인생이 안 풀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무심코 자꾸 인생이 안 풀린다는 앞부분에 방점을 두게 되고,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자꾸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2 회독을 느리게 읽고 있는 지금은 뒷부분에 담긴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책의 뒷부분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앞에서부터 꾸준히 이야기해 온 것임을 이제야 이해한다.

요 며칠은 내가 쓰는 글이 너무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원 도서의 가치나 생각을 오히려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단어 하나를 배울 때 백번 천 번을 반복해야 배우듯이, 같은 말도 이렇게 저렇게 반복하다 보면 마음에 닿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항상 그랬지만 반복하면 할수록 내 마음에 더 깊이 스며들고 새겨진다는 생각이 든다.



스며듦과 새겨짐이 읽어주시는 분들의 마음에도 평온으로 함께하길 바라며.

오늘의 글도 마쳐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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