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어제 요리를 하다가 손을 베었다
약간 배어 나온 피, 약도 바르지 않고 그냥 설거지도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처가 났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빨간 속살이 힐끗 보인다.
임신으로 약 사용을 피하려는 것과 별개로 나는 원래도 작은 상처에 약을 잘 바르지 않는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꽁꽁 싸매놓지 말고 공기가 잘 통해야 낫는다"는 엄마의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워낙 건강해서 잔상처 외에는 크게 다치지 않았던 나에게 거의 유효했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기에만 스쳤는데 아프기도 하지만, 물을 끼얹어도 상처 난 것조차 까먹기도 하는데..
꽁꽁 감싸두자니 안에서 곪을 게 뻔하고,
그냥 두자니 스치는 바람에도 아프다
결국 좋은 말을 모아서 아주 얇게 발라본다.
그리고 밴드로 감싸버리는 대신 쓰라림이 올라오면 입김을 후후 불어 본다.
잊어버리면 잊어버리는 대로,
쓰리면 쓰린 대로.
다행히 부러지고 찢기지 않은 타박상이니까
쓰라린 시간보다 잊어버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까지 기다려본다.
그런데, 부러지고 찢기면 어쩌지?
뭘 어쩌겠어.
단단한 부목을 대고, 얼기설기라도 묶어내고,
또 기다려야지.
더 단단한 뼈와 피부가 자랄 때까지.
근육을 키우는 방법은 근육에 미세하게 상처를 내고,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더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처 나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 나며 자라게.
부러지고 휘어도 자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