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예그림의 단어사전

by 예그림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냥 좋은 말이다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이 말이 참 뼈저리게 와닿는다.


일상에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요새는 특히 그 선택하는 것 자체에 피곤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다양한 배달음식들을 보며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고민만을 늘린다.


또 선택이라는 것의 무서움은 그 선택에는 보통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아주 작게는 오늘 저녁을 선택하면, 맛있을지 맛없는지 역시 내 책임이다. 맛있으면 좋겠지만, 요리든 배달이든 맛이 없는 경우에도 내 책임이니 그냥 수용한다. 하지만 좀 크게 가본다면 어떨까. 직업을 선택하면 그에 따라오는 업무와 연봉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 바라지 않는 기대 등도 따라온다. 이것은 저녁메뉴에 비해서는 매우 무겁다.


예전에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었고 다른 선택지는 모두 오답이었다. 요새는 모두가 공부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반영되어 세상이 좀 열리긴 했으나, 그래도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히려 고교학점제나 진로 지도라는 이름으로 더 빠르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예전의 사회가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였다면, 지금은 선택 과잉으로 고통스러운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오히려 선택에 지치는 것 같다.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 매번 시켜 먹지만, 옷이나 물건은 아예 사지 않거나 꼼꼼히 비교해 보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그냥 쓰던 것을 쓰고 말게 된다.


선택지가 정말 많아졌지만, 오히려 더 적어진 기분도 든다. 5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좀 꼼꼼히 비교도 해보고 살펴보겠지만, 50개 중에 고르라고 하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고르고 싶어진다.

옷이나 음식은 한 끼나 잠깐에 불과하고 실패해도 그냥 그때뿐이지만, 인간관계, 직업, 집구매, 결혼 등 큰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같다. 그 항목을 선택할 때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핵심 같다.

직업을 예로 들다면 나에게는 월급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지가 일단 1번인 것 같다. (사람마다 자아실현이나 꿈의 실현 등이 1번이 될 수 있겠지만).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1번이지 외모나 지위나 다른 부분을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다른 기준을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1번으로 생각하는 기준을 잃지 않는 것이다. 결혼할 때 외모도, 경제력도, 성격도, 집안도, 주변 환경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1번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성격이라면, 일단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집안 때문에, 주변 환경 때문에, 돈 때문에 내 1번 기준을 놓친다면 옳은 선택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1번~10번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세상에 선택지는 없다. 10번은커녕 1~5번 기준을 만족하는 선택지도 거의 없지 않을까.


1번 기준으로 최우선으로 하고 다른 부분들은 그 안에서 채워나가 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선택의 방법이다. 1번 기준으로 일단 모든 것을 걸러내는 것. 그게 선택을 단순하게 하고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다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1번 기준을 어긋난 대신 2,3,4번 기준을 만족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일 것 같다. 마음속 기준이라는 것이 크기나 점수로 딱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최우선순위는 좀 어긋나지만 다른 기준들이 만족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나의 시각도 상황도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1번 기준을 충족했다고 생각해도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최상의 선택'이란 불가능하다.

우선순위라는 것을 따진다 해도 우선순위도 바뀌고 나도 바뀌고 대상도 바뀐다.


그래서 결국 B와 D사이에서. 답이면서 답이 아닌 C들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이 글감도 괜찮은 선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문장이나 표현도 100%의 완벽 따윈 당연히 없다.


가장 좋은 선택은 '현재의 최선'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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