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예그림의 단어사전

by 예그림

이제 임신 12주 차로 곧 안정기가 다가온다.

임산부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 안정기는 되고 나서 움직이자 등등..

살면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들은 적이 있나 싶다.


나부터도 왠지 안정해야 할 것 같은 그 느낌과 알 수 없는 압박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참 건강하고 입덧도 크게 없어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뭔지도 모르고 해온 안정.

그놈의 안정이 뭔지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놀라운 건 내가 2가지 안정을 섞어서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안정[安定]

1.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함.


안정[安靜]

1.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함.

2. 병 치료를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함.



임신에서 '안정기'라고 할 때 안정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유지된다는 의미의 안정이었다.

아무래도 임신 초기는 좀 불안정하고, 12주 이전에 유산의 90% 이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12주 이후를 안정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신해서 매일 들었던 안정.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2번째 안정이었는데, 단어풀이를 보니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도 안정이지만, 치료를 위해 편안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것도 안정이라는 점이 와닿았다.

육체적 안정과 정신적 안정 모두 어쩌면 신경 쓰고 노력하는 게 필요한데, 나는 어쩌면 안정하기 위해서 초조해하고, 안정을 잘 못할까 봐 불안해하며 안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게 편하고 걱정 없으면서도 조용하다는 건데, 설명을 읽자마자 '속 시끄럽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수런거리고 울렁이던 마음.

안정하려다가 안정과 더 멀어지기만 한 게 아닐까.



금은 자책하다가 생각을 바꾸어본다.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든, 편안하고 고요한 것이든 순간의 상태나 현상에 불과하다.

단어로 '안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우리를 집착하게 하지만 결국 항상 안정은 불가능하다.

사랑도 미움과 애증과 사랑의 사이를 오가는 그 상태를 사랑이라고 하듯이, 안정도 불안과 걱정과 기쁨을 오가는 그 사이가 안정 아닐까.

가까이서 보면 파도가 크게 오가지만, 멀리서 보면 평온한 수평선인 것처럼...


그리고, 안정된 상태로만 가는 것도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고정되어 변화도 성장도 없는 삶을 나는 원하지 않으니까.


불가능한 '안정'대신,

'흐름'을 바라본다.


이리 부딪히고 돌아가고 가끔 고여도, 결국 결말로 나아가는 것.

물결도 물살도 있지만, 결국에는 흘러서 닿을 거라고 믿는다.

그 닿은 곳에 오히려 찰나에 안정이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안정기이고,

안정을 향해 잘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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