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흐릿한 호적
말할 수 없다. 어머니가 내 학교생활을 알게 되는 건 싫다.
차라리 연탄가스에 질식하는 게 낫지.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꼰대는 학교에서 사냥개로 유명하다.
불량 학생을 잡을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온다.
말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 진짜 도망갈 곳이 없다.
결국 말을 하게 되는 쪽은 어머니다.
'설마 우리 어무이가 내를 때리겠나.'
"어무이요. 내일 저랑 학교에 같이 가입시...
짝.
눈앞이 깜깜해지는 경험을 또 할 줄이야.
"회초리 가온나. 니 손으로 안 가져오면 내가 일어난다. 니 알아서 해라."
"......."
"벙어리가? 꿀 뭇나?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고! 빨리 회초리 안 가오나?"
"자...잘못했심더..."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아나? 한번 들어나 보자. 말해봐라."
"학교도 빠자묵고.. 교회도 빠자묵고.. 담배도 핍니더."
"그게 다 가? 더 할 말 없나?"
이렇게 무난히 넘어가는 건가?
"예. 제가 잘못한 거 이제 전부입니더."
"안 되겠다. 빨리 회초리 가온나. 퍼뜩!"
왜? 도대체 왜?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건 이게 진짜 다였다.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 걸까.
공부 좀 못해도 그렇게 예뻐하던 셋째 아들을 이제 조금도 믿지 않는 걸까.
"어무이! 저 진짜로 이게 답니더. 이제 안 할 거라예. 믿어주이소."
"하... 회초리 가지고 오라는 말 못 들었나?"
짝. 짝. 짝. 짝. 짜악.
준철이 형은 나보다 훨씬 먼저, 훨씬 오래 사냥개에게 쫓기는 신세였는데
왜 나한테만 이럴까.
잘못한 일로 아버지한테 혼날 때도 말리면 더 할까봐 가만히 보기만 하던 어머니가
왜 나를 때렸을까.
큰 소리 한번 안치던 어머니가 왜 그렇게 꽥꽥 질러댔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도 아직도 걷고 있다.
학교가 이렇게 멀었었나.
드르륵.
"아, 준철이 준호 어머니 오셨습니꺼? 이쪽으로 앉으이소.
제가 소식은 들었는데 직접 못 가봐서 죄송합니더. 담임선생으로 면목이 없네예."
"아입니더. 선생님 바쁘신데 안 오시길 천만다행이지예. 오셨으면 대접할 것도 없심더.
근데, 무슨 일로 학교로 부르셨어예?"
"다름이 아이고 준철이는 어무이도 잘 아실겁니더. 학교 입학하자마자 중학생 밖에 안된기..
말려도 안되더라고예. 근데 준호는 아이다 아입니까."
"....예. 우리 준호 착하지예."
"맞심더. 근데 준호가 요새 좀 준철이랑 많이 붙어 댕기고 지 또래 중에서도 힘도 쓰는 거 같고,
만만한 선생 골라서 수업 시간에 안 나타나고, 아무래도 그 일 있고 나서부터.."
"예. 알고 있습니더. 다 부족한 제 탓이지예. 죄송합니더. 인자 신경 쓰시는 일 없도록 할게예.
죄송합니더. 죄송합니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사냥개에게 연신 사과를 해댔다.
"....."
"내가 니 애비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 봐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모르나.
맨날 새벽마다 너거 넷이 제발 좀 잘 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 아나 모르나!"
"......"
"오늘부터 니 내 아들 아이다. 집에 들어오지 마라. 호적에서 파뿔끼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