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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Feb 22. 2020

이번 달도, 정신과에 갑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나는 매달 정신과에 간다. 내가 살고 있는 메싸이 병원에는 정신과가 없어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치앙라이 병원에 가야 한다. 남의 약을 타러.


당(가명)은 9살 정도 때부터 우리 보육원에서 지냈는데, 평소 유독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인 평범한 아이였다. 당이 14살쯤 되던 해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혼잣말을 중얼중얼하고, 가끔 허공에 대고 까르르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일 부스스한 머리에 동일한 옷을 입고, 손을 잡고 달래어 목욕을 시켜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었다. 당은 당시 보육원에서 보호하고 있던 다른 정신지체 환우들과 몸싸움을 자주 하였고, 밤늦게 와 새벽마다 괴로운 짐승마냥 울부짖었다. 급기야는 밤마다 몰래 보육원 담을 넘어 사라지곤 했다. 야밤에 모두가 깨어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보통은 동네의 집들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과자 따위를 훔쳐 먹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주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찾게 되었다.


당을 그대로 보육원에 두는 것은 다른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하나둘씩 나왔고, 나 또한 그런 생각이었다. 날을 거듭할수록 아이는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당은 가족이 있나요?"

"있긴 한데... 부모님이 모두 정신이 말짱하지 못하세요."


당은 보육원에 있는 대다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국 시민권이 없었다. 즉, 의료보험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당을 병원에 보내야 했다. 


보육원에서 당을 병원에 데려가니, 바로 입원하여 격리치료 조치하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국적자에다 돈을 낼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한 아이를 입원시켜 줄 시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는 결국 멀리 치앙마이 주에 있는 한 아동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매달 2만 바트의 병원비가 지출되었다. 현지에서는 (서민 생활 기준으로) 4인 가정의 한 달 생활비에 가까운 돈이다.


다행히 당은 반년을 채우지 않고 가정에서 치료를 해도 좋다는 의견을 받았다. 당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연로하시고 지능지수가 평균보다 낮았지만, 당이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면 함께 지낼 수는 있었다. 



치앙라이 국립병원은 늘 환자가 넘쳐난다. 국립병원인 만큼, 태국 시민일 경우 치료비가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시민권이 없는 우리 아이들도 사립병원에 데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설계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혹시 만난다면 칭찬을 해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콜록대는 환자들의 홍수를 넘어 A병동에서 진료신청을 하면 한참 걸어 있는 C병동에서 번호표를 받아 무작정 대기한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간호사가 몸무게와 혈압을 잴 것을 요구한다. 대리인임을 설명하면 다른 번호표를 받고 다른 구역에서 대기한다. 40분쯤 더 기다리면 의사 선생님 방 앞의 짧은 줄에서 대기하게 된다. 의사 선생님을 뵈면 한 달 전에 받은 약을 가져다주었을 때의 아이의 상태를 반영해서 질문에 답변할 수밖에 없다. 


"밤에는 잘 자나요?"

"네... (못 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자해하는 일이 있나요?"

"아니오... (그냥 멍하니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찝찝하게 약 처방전을 받으면 다시 약 받는 구역에서 30분 정도 대기한다. 약을 받고, 약값과 진료비를 지불하면 미션 클리어. 메싸이에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것까지 감안하면 거의 하루의 전부가 훌쩍 지나간다.


약을 한 아름 받아 오면 트렁크에 한 달 동안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쌀과 라면, 과자 등을 싣고 치앙라이 근교에 있는 작은 고산족 마을로 이동한다.


당이 지내는 마을의 일반적인 풍경. 주민들 중엔 태국어를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슬레이트 반, 구멍이 숭숭 뚫린 대충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것 반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집들에서 살고 있다. 어른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 태국어를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태국어를 잘할 수 있었다. 


당은 하루 종일 대청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언니 기억나?"

"....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고 젓는 수준이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전부이다. 가져온 식량을 집 안에 내려 주면 과자봉지를 뜯어서 하염없이 먹는다. 누군가 저지하지 않으면 가져다준 과자를 하루 만에 다 먹는다고 한다.


당의 아버지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막노동 현장에서 허탕을 치고 오는 일이 더 많으시다고 한다. 어머니는 따로 일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가 공사일을 하지 못하는 날은 가족은 수입이 없다. 지금 지내고 있는 집도 어쨌든 월세이기 때문에 수입이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


보육원에서 파는 커피를 늘 한 포대씩 당의 집에 들고 간다. 당의 어머니와 당에게 크기별로 커피를 분류하는 작업을 부탁하고 있고, 소정의 사례비를 지불하고 있다. 지적장애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고, 그 누구이든 간에 노동의 기쁨은 삶에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단순작업을 지루해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척척 해내는 장점이 있다.


당의 어머니와 당이 커피콩 분류 일을 하는 모습




하지만 몇 시간을 우왕좌왕한 정신병동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날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치 밑 빠진 독에 여러 명이 붙어서 열심히 물을 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 지난달의 어렴풋한 기억에 기대어 약을 받아 약값을 지불하고 일용할 양식을 전달하지 않으면, 당과 그 가족은 바로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다.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증상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통해 그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확률도 매우 낮다.


때로는 매달 약값으로 들어가는 돈을 가지고 다른 아이를 교육시키면 더 [효율적] 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당과 그녀의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의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그 앞에서 효용성의 논리는 무너짐을 느낀다.


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매일매일 물을 붓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달에도 나는 정신병동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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