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5반의 잊지 못할 추억 이야기
우리 반은 매일 일기 1편, 칭찬 노트 1편(이틀에 한 번이었던가?)을 쓰는 것이 숙제였다.
처음에는 쓰레기 줍기나 다른 친구들 도와준다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착한 행동' 혹은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칭찬 일기만 썼었다.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 봐도 누구를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도 숙제는 해야 했기에 어느 날은 친구의 큰 키나 유머를 칭찬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나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일기에 언제나 정성 어린 답글을 적어주셨다.
칭찬 일기를 쓰면서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을 칭찬할 만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괜한 열등감에 시기 질투하던 어린 마음을 내려놓고 내게 없는 사람들의 장점까지도 그저 '장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다.
조용하고 소심한 친구, 활발하고 거침없는 친구. 우리 반에도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이 함께 했지만 서로 다투고, 토라지고, 다시 화해하는 일들이 반복되더라도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졌다.
유독 수업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산만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종이접기를 하며 놀거나 점토 놀이를 할 때면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며 칭찬해 주셨다.
어느 날엔가 그 친구가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러 다른 반에 간 사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특별한 친구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걸 여러분도 알고 있을 거라고. 선생님과 우리가 함께 자주 칭찬도 해주고 도와주면 그 친구도 분명 고마워할 거라고.
"그래줄 수 있죠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사랑했기에 "네!!!!!" 입을 모아 대답했다. 잠시 후 심부름을 마치고 온 친구가 앞문으로 멋쩍게 들어왔다.
그날 이후 나는 짝꿍이 된 그 친구가 수업시간에 옆에서 조용히 종이접기를 하고 있으면 너무 잘했다며 칭찬을 했고, 늘 교과서를 안 꺼내던 짝꿍 쪽으로 내 교과서 절반을 보여주며 '지금 여기하고 있어!' 일러주었다.
혹여나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할 정도가 되면 선생님은 따끔하게 혼을 내셨고, 오래간만에 교과서를 책상 위로 잘 펴놓은 날이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셨다.
그 친구는 날이 갈수록 표정도 수업태도도 좋아졌고, 우리 반 사이에서 '재미있는 친구'로 통하게 되었다.
우리 반 칠판에는 늘 피자 8조각이 붙어있었다. 우리가 모두 선생님 말씀을 잘 듣거나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한 날 선생님께선 옆 칠판에 피자를 한 조각씩 옮겨 붙여주셨는데, 8조각이 다 모이면 우리는 투표를 통해 하고 싶은 단체 활동을 정할 수 있었다.
8조각을 다 모은 우리 반은 바자회놀이, 요리대회, 과자파티 등등 웃고 떠들며 여러 활동을 했고, 하루는 대법원 체험학습을 나가 실제 범죄자가 재판받는 모습도 봤었다. (판사와 범죄자의 대화 내용으로 얼추 마약 관련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법원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까만 연필세트를 한동안 잘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 혼자 우리 각양각색 32명의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신 건지 존경스럽기만 하다. 나는 5학년 15반의 '꼬마시인'으로 불렸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잘 썼다고 할 때마다 신이 난 나는 직접 책을 만들어 시를 써서 시집을 완성해 보이곤 했다.
한동안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상대방의 턱을 치고 도망가는 것이 반에서 유행(?)을 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한 번이라도 친구들 치거나, 때린 사람들은 교실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야, 너도 때렸잖아.", "내가 언제!", "내가 봤거든?" 우리는 서로 소곤소곤 눈치 보며 앞으로 쭈뼜쭈뼜 나갔다.
3분의 2나 되는 친구들이 쭈뼜쭈뼜 교실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선생님은 근엄한 표정으로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누구한테 맞았고, 누구를 때렸는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자신이 때린 친구에게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사과하도록 했고, 반격한 친구에게도 "나도 미안해, 사이좋게 지내자." 사과하도록 했다.
우리는 펭귄처럼 반발자국씩 움직이며 서로서로 사과를 했고 턱을 치고 도망가는 유행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유행이 불어왔다. 우리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앞, 뒤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딱지치기를 했다.
5학년 15반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행복했던 15반의 추억을 책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매년 이 책을 만들어 선생님이 맡았던 반 아이들과의 추억을 간직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을 사랑했기에 15반을 선생님과 함께 간직하게 될 거라는 사실에 즐겁게 책의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5학년 15반의 잊지 못할 추억 이야기
학급회의 시작 전 반가를 불렀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개사한 곡으로 내가 작사한 곡이 투표를 통해 과반수 이상으로 뽑히게 되었다. 뿌듯하다.
32명의 시도 실려있다. 다시 읽어보니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들의 미래 모습에 대한 소설도 적었다. 1조가 2조의 미래를 쓰고, 2조가 3조의 미래를 쓰는 방식이었는데, 이 소설 속의 나는 베스트셀러 부자 작가가 되어 선생님께 새로 나온 소설을 특가(500원)에 드리고 있다. 비록 글을 써서 번 돈은 없지만... 나름 친구들이 써준 소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선생님은 더 표현해 주지 못했다고 하시고, 우리 반 친구들이 착하고 예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은 것이라 하셨지만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안에 든든한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5학년 15반의 잊지 못할 추억 이야기]
선생님께서
가슴에 심어준 사랑의 씨앗을 세상 곳곳에 뿌리는 사람이 되길...
to. 15반 엄마. 선생님께.
지금 제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신다면 자랑스러워하실까요? 선생님께서 심어주신 사랑의 씨앗, 세상 곳곳에 뿌리며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지치고 힘든 날 저희 5학년 15반 친구들이 무럭무럭 자라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선생님께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