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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Oct 22. 2023

4대를 거쳐 온, 시간의 무게

불안, 이런 것까지 닮는가 유전되는 기질

나는 즉흥적인 성격이고 참 쉽게 웃고 망설임보다는 적극적인 태도로 긍정적인 면도 많은 편인데, 불안 때문에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지금은 어느 순간 늪에 빠지면 생기지도 않을 미래 걱정과 후회되는 과거일을 꼽씹으며 불안 속에 잠식될 때가 있다.

그 불안은 참 질기고 나쁜 쪽으로만 계속 살을 덧붙인다. 어느새 덩어리가 되어 그 무게에 한참 동안 짓눌려 바로 앉지도 못하게 될 때가 있다.

나의 이런 안 좋은 점들을 똑 닮은 딸의 모습을 마주하면, 나는 이 아이가 겪게 될 시간의 무게가 걱정이 되어 또 불안해진다. 이 불안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계속 물었다. 40살이 되고, 거주하는 국가가 달려지고,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다가 전업맘으로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서 나를 더 알아가게 되었고, 더 많은 의문을 가지며 지내왔다. 지금까지 내가 얻어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엄마와 외할머니로부터 온 가족 유전자, 내 딸에겐 외가 쪽 요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자매로 연년생이 동생과 많은 고민을 나눴는데, 동생은 나보다 더 소심하고 더 불안도가 높은 아이였다.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동생도 여전히 불안이 엄습해 오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한다.

떨어져 살게 되면서 예전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통화할 시간이 주어져 근황을 물으면 이런저런 불안이 보인다. 늘 동생보다는 내가 조금 덜 불안을 다루어내서인지, 1살이라도 언니로서 책임감이었던 것인지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고 합리화를 하며 불안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었다.

외가 쪽 이모나 할머니에게서 보였던 화 덩어리들은 명절이나 행사 때 터지기라도 하면 우린 애써 외면했었지만, 마음에 많이 남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와 외삼촌들도 확실하지 않고 어쩌면 일어날 일에 대해 감정적인 상태로 경상도 사람들이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 큰 언성은 따라오는 일이 된다.

외할머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셨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손자손녀들에게 많이 다정하셨다. 그런데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영역에서 다투실 때에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무서우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난 아빠, 친가 쪽 성향을 더 많이 닮았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니었다. 나 또한 굉장히 감정적이고 화도 많았다.

첫딸이 10살이 되면서 이제 그녀의 캐릭터가 명확해지고 있다.

한국에서와 달리 많은 시간 딸을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조금 더 알아가고 있는데, 그녀는 나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들, 내가 해온 성찰들을 알려 주어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르침을 전달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나마 사이를 좋게 유지하여 20년, 어쩌면 평생을 주야장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잔소리로 듣고 당연 흘릴 것이고 귀등에도 안 닿겠지.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엄마의 잔소리에 너무 힘들었고 피하고 싶었으며 무시했던 나라서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라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또 구구절절 이야기를 한다. 네가 조금이라도 알아듣고 변할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낮은 목소리로 7번, 팔을 잡고 2번을 이야기했다.

안타까워 죽겠다. 도대체 왜 이리 욕심은 많고 말은 무조건 내뱉어 버리는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3번을 반복해서 동생에게 퍼붓는지.

아직은 어리고 순하다. 그런데도 기질로 타고 난 성격이 세심하지 못하고 거칠다. 사람은 너무 좋아하고 사람에게 관심도 많고, 말도 많고 사람들에게 영향도 많이 받는 성향이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된다.

그러면서 내 주변에 말을 이쁘게 하고 세심한 매너와 배려를 해줬던 좋은 사람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받았던 작은 배려를 열심히 설명해주다 보면 또 나는 내 이야기라 빠져있고, 딸은 또 귓등으로 흘리고 있다.

조금 더 근본적이고 가 닿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참 좋은 사람들에게 나는 질문도 많이 했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온화할 수 있어? 어떻게 그 상황에 화가 안나? 그런 세심함은 어떻게 배웠어? 그 답들은 한결같았다. 그들도 그런 성향으로 태어났을 뿐, 학습되고 의식적으로 남을 감동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칠지만 가지고 태어난 기질을 잘 돌보아 갈 수밖에.

인생이란 원래 만만치 않고, 사람이란 원래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 그저 사는 동안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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