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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영 Sep 14. 2023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요

    여러분은 작품에서 대사를 왜 쓰나요? 왜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주고받게 만드나요? 혹시 대사를 쓰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A : 밥 먹었니? 

B : 응. 먹었어.      


    간단한 대사입니다. A와 B는 왜 대사를 할까요? 


    대사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위의 대사를 통해 A는 B가 밥을 먹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죠. 근본적인 목적은 독자에게 B가 밥 먹었다는 걸 알리는 겁니다. 결국 모든 대사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정보의 홍수’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지금은 홍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이 되어 있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접하게 되어 피로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란 말도 생겼고, 쓸 때 없이 말 많은 사람을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로 부르기도 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독자를 피곤하게 합니다. 꼭 필요한 정보라고 해도 너무 길면 투머치토커처럼 독자를 지치게 만듭니다. 웹툰을 볼 때 대사나 지문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읽지 않고 눈으로 대충 훑으며 스크롤을 내린 적 없으신가요? 

    작가는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해서 길고 자세하게 대사나 지문으로 설명해 놓지만 독자는 피곤합니다. 너무 길어서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며 건너뜁니다. 그렇게 대충 넘어간 부분은 당연히 독자의 머릿속에 남지 않게 되고, 이후 대충 넘어간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아! 앞에 나온 긴 대사를 읽지 않아서 지금 이해를 못 하는 거구나!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독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이해가 안 간다는 느낌을 받은 채 계속 봅니다. 그리고 그 느낌들이 점점 쌓이면 웹툰에 집중하기 힘들어집니다. 심지어 재미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작가는 대사를 쓸 때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대사일까? 꼭 필요한 대사가 아니면 쓰지 말고, 꼭 필요한 대사라도 짧게 말할 순 없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일단 쓰고 싶은 만큼 대사를 쓴 후에 필요 없는 부분을 삭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삭제를 했는데도 뜻이 통한다면 필요 없는 대사입니다. 대사 없이 인물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글자보다 그림이 더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글자 가득한 설명서 보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설명서가 더 이해하기 쉬운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해하셨나요? 그럼 한 번 테스트를 해볼까요?     

 

(A가 B에게 소개팅을 시켜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B에게 물어보는 상황입니다.)

A : 야! 어제 소개팅 어땠어? 

B : 우와~!! 나 어제 진짜 세상에 태어난 걸 감사했잖아!! 그 사람을 보는 순간! 풍덩! 사랑에 빠졌어!! 그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이들 학교 졸업 다 시킨 후, 둘이서 다정하게 노년을 보내는 모습까지 한 순간에 쫙 펼쳐지더라!! 정말 고마워! 넌 내 은인이야!! 내가 앞으로 진짜 잘할게! 이 은혜 평생 감사하며 살게!!  


    B가 소개팅 상대방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네요. 이 장면을 웹툰으로 옮긴다면 B의 대사가 상당히 길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B의 대사를 줄여볼까요? 아래의 빈 칸에 최대한 간략하게 B의 대사를 줄여봅시다.                  

    몇 글자로 줄이셨나요? 같은 테스트를 수업 시간에 했을 때 기억에 남는 수강생들의 답변을 말씀드리자면, “넌 이제부터 가족이야!”, “베리베리쌩유!”, “님 내 은인!!”, “짱!” 등등 아홉 자, 여섯 자, 네 자, 한 글자로 줄인 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몇 글자로 줄이셨나요? 

    제가 원하는 대답은 한 글자 보다 더 아래의 레벨. ‘대사 없음’입니다. “소개팅 어땠어?”란 A의 질문에 B는 활짝 웃으며 A의 얼굴 앞에 엄지척!!을 한다면 굳이 대사가 필요 있을까요? 대사 없이도 B의 만족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동이나 표정, 상황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대사가 없는 편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정보 전달 방법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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