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아직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사람과 마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저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제게 호감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소개해야 그 사람이 저한테 매력을 느낄까요?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 또 고민을 합니다.
이성과의 첫 만남을 앞둔 사람처럼 작가도 고민해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가 내 스토리 속 인물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 또 고민해야 합니다. 독자는 내 스토리 속 인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아직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잘 해줘야 합니다. 마치 소개팅에서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내 스토리 속 인물들도 독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이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독자는 내 스토리 속 인물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소개팅은 전화번호만 알아도 상대방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까지 사전 조사에 열을 올립니다. 왜? 궁금하니까. 상대방이 궁금하니까 만나기도 전에 그 짓(?)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내 작품을 읽게 될 독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작품 속 인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우연히 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작품 속 인물들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어? 새 작품이네? 한 번 봐볼까?’하는 마음으로 내 웹툰을 클릭합니다. 그러다 재미있거나 관심이 생기면 계속 보는 거고, 아니면 곧바로 뒤로가기를 눌러 영영 안녕입니다.
그럼 이렇게 중요한 독자와의 첫 만남에서 내 작품 속 인물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어떻게 소개해야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 최상훈. 26세. 172cm. 63kg. 소심함. 대학생. 3남매 중 둘째.
• 김철민. 31세. 176cm. 70kg. 이기적임. 대학원생. 여동생 한 명.
웹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보통 등장인물 그림의 아래 부분이나 윗부분에 지문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걸 본 독자들은 인물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처음 만나는 인물이지만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그 인물에 대해 관심이 생깁니다. 라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는 거의 없습니다. 인물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부분의 독자는 내 작품의 등장인물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흘려듣기 쉽습니다. 어쩌면 첫 만남부터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별로 남아있질 않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자! 잠시 집중해주세요. 시선을 아래의 질문에 고정을 시킨 채, 최대한 빨리 대답해보세요.
1. 앞에서 예로 들었던 캐릭터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2. 키가 몇cm이었죠?
3. 성격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4. 여동생이 있었던 건 27세의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36세의 사람이었나요?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정확히 대답하셨습니까? 기억력 테스트가 아닙니다. 입장을 바꿔본 겁니다. 앞서 여러분은 독자의 입장에서 제가 제시한 인물들을 봤습니다. 저는 작가의 입장에서 그 인물의 이름, 키, 몸무게, 성격 등등 여러 가지를 정확하게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기억하는 게 몇 가지였나요? 심지어 4번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 다 27세, 36세가 아니거든요.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읽은 지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기억하는 게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작가가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정보를 직접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설명은 독자에게 닿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독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학교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선생님께서 수학 문제 푸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거라서 반복, 강조하며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왜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걸까요?
가전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품을 구입하면 대부분 글자 빽빽한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습니다.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설명서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설명서를 제대로 읽으시나요? 혹시 설명서에 그려진 그림만 대충 보고 넘어가진 않으신지요?
인물소개도 똑같습니다. 인물에 대해 글로 설명되어 있으면 독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냥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인물의 소개는 설명이 아닌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독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A: 소심함.
B: 이기적.
C: 사교적.
D: 4차원.
A, B, C, D 이렇게 네 명의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작가가 되어 A, B, C, D의 성격을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는 소심하다. B는 이기적이고. C는 사교적이며. D는4차원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게 가장 쉽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직접적인 설명은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보다 조금 나은 방법으로는 다른 인물이 대사로 설명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A를 가리키며 말하는 겁니다. “야! 쟤가 그렇게 소심하대!” 또는 B를 보며 귓속말합니다. “말도 마! 저 B는 진짜 이기적이야!”
하지만 이것도 앞의 방식과 크게 차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드렸듯이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집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 이해하기 힘드시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 B, C, D, E, F. 이렇게 여섯 명의 친구가 호프집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꽃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E와 F가 벌떡 일어나더니 격하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러자, 그걸 본 A는 안절부절 못 합니다. ‘쟤들이 왜 싸우지?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아까 과일 안주 먹자고 했는데 혹시 그거 때문에 싸우는 건가? 으악! 정말 나 때문인가 봐!!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A는 식은땀을 흘리며 혼자 끙끙 앓습니다.
반면 B는 별 생각 없습니다. 시원하게 꿀꺽꿀꺽 맥주를 원샷하더니 카운터를 향해 외칩니다. “이모님~! 여기 맥주 한 잔 더 주세요!!” 옆에서 친구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원한 맥주로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고 싶은 B입니다.
하지만 C는 다릅니다. 벌떡 일어나 E와 F를 적극적으로 뜯어말립니다. “야! 친구끼리 왜 싸우고 그래? 그러지 마~!! 네가 참아! 응? 응! 싸우지 마~!”.
이때,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D가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는군요. 그러더니 전화번호를 누릅니다. 1.1.2.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여기 싸움이 났는데요...” 친구고 뭐고 경찰에게 신고를 합니다.
자 어때요? 느낌이 오시나요? 위에선 A, B, C, D의 성격에 대해 지문이나 대사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A, B, C, D, E, F. 친구들이 술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읽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A는 친구가 싸우는 걸 보며 혼자 끙끙 앓는 소심한 사람이구나. B는 친구고 뭐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군, C형은 친구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싸움을 말리는 사교적 성격이고, D는 그냥 4차원이네.
이런 게 바로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인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편의 이야기를 봤을 뿐인데, 우리의 머릿속에는 A, B, C, D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입력됩니다. E와 F가 싸우는 상황을 통해 A, B, C, D의 반응을 목격했을 뿐인데 자동으로 그들의 성격이 파악됩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대사나 지문을 통한 직접적인 설명 보다 이렇게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보여주는 방법이 인물을 기억하게 만드는데 효과적입니다. 등장인물이 정의롭다면 정의로움을 보여주는 사건이나 상황, 찌질하다면 그 찌질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을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인물에 관한 건 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룰 테니, 지금은 ‘인물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