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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영 Sep 14. 2023

재구성만 기억하면 돼

    스토리를 공부하다보면 자주 접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플롯, 캐릭터, 대사]인데요. 작가 지망생 시절, 이런 단어들이 설명된 이론서를 보면 꼭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걸 알아서 뭐하지?’      


    학창시절, 수학선생님은 근의 공식도 이차함수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니 꼭 알아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다 잊었고, 하나도 모른 채 살고 있는 지금, 불편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실생활에서 근의 공식이나 이차함수를 사용하는 일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습니다. 

    마찬가지로, 플롯, 캐릭터, 대사 같은 용어들도 ‘플롯이란 무엇인가?’, ‘캐릭터의 창조 이론에 대해 설명하시오’ 같은 시험문제를 접하지 않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론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학생들에게 작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보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걸 기대하셨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몇 페이지에 걸쳐 복잡하게 개념을 설명하는 그런 책들이 스토리 쓰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전문적으로 이론 공부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깊이 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웹툰 스토리를 쓰는 작가가 어떻게 이해하면 되고, 또 실제 스토리 창작에 있어서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패스하겠습니다.  


    플롯이란 간단하게 ‘줄거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냥 줄거리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릴 테니 다음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죽었다. 왕비가 죽었다.]     


    눈으로 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주세요. 어때요? 어떤 느낌이신가요? 지금의 느낌을 기억하고 다음 문장을 읽어주세요.      


[왕이 죽었다. 그러자 왕비가 죽었다.]      


    이번엔 어떤가요? 앞의 문장을 읽을 때랑 같은 느낌인가요? 아마 다를 겁니다. 왕과 왕비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중간에 ‘그러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서로의 죽음에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앞의 문장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사실 이 부분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에 나오는 [‘왕이 죽고 왕비도 죽었다’는 스토리.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기고 왕비도 따라 죽었다’는 플롯이다]라는 설명을 살짝 바꾼 것인데요. 바로 이게 플롯입니다. 이해하셨죠? 하고 넘어가면 “이게 끝이라고?” 하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플롯을 설명하겠습니다. 다음 글을 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남자가 의자에 묶여있는 사람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남자는 굉장히 흥분한 듯 보이고, 의자에 묶여있는 사람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네요. 곧이어,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사방에 튀는 피!! 동시에, 따르르릉!!!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는 남자. 


“야! 너 지금 어디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남자의 표정이 굳습니다. 그리고는 급하게 밖으로 나가더니 무언가에 쫓기듯 계단을 뛰어 내려갑니다! 남자는 초조한 얼굴로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에 올라탄 후, 시동을 거는데... 푸드드드... 시동이 잘 안 걸립니다. 

이때 다시 또 전화가 울립니다. 아까 걸려왔던 그 번호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전화를 받는 남자. 


“야! 너 지금 어디야?!!”

“미안 미안!”

“너 또 잤지? 내가 아침에 전화로 얘기한 거 잊었어? 바로 나오라고 했잖아!”

“잠깐만 누웠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깜빡 잠들었어... 근데 있잖아! 내가 꿈을 꿨거든? 킬러가 된 내가 의자에 묶여있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꿈이었는데...” 


남자는 방금 전 꾼 꿈에 대해 말합니다. 마침, 차의 시동도 걸렸습니다. 전화통화를 하며 약속장소로 출발하는 남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다 읽어보셨나요?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혹시 반전의 재미가 있진 않았나요? 아니면 허무한 엔딩에 실망했나요? 이 글은 제가 플롯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께서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 속 사건들을 현실의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주세요. 남자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적는 겁니다.       


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0.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쓰셨나요?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분이 정리해주신 글은 아마 이런 순서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1. 아침. 친구와 전화 통화중인 남자. 친구는 바로 나오라고 당부한다. 

2. 약속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남자.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든다. 

3. (꿈속에서) 의자에 묶인 어떤 사람의 머리에 총을 쏘는 남자!

4. 이때,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5. “야 너 지금 어디야?!” (약속에 늦은 남자를 재촉하는 친구의 전화) 

6. 전화를 받고 (잠이 깬 남자. 약속에 늦었다는 걸 깨달음) 표정이 굳어지고... 

7.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온 남자는 차에 올라탄다. 

8. 하지만 시동이 안 걸려 애를 먹는데... 

9. 다시 또 울리는 친구의 재촉 전화! 남자는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해준다.     

10. 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출발하는 남자.      


    이게 현실에서 일어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쓴 것과 비슷한가요? 만약 이 순서대로 웹툰 스토리를 쓴다면, 꿈꾸느라 약속 시간에 늦은 남자를 보여주는 평범한 에피소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반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어떤 순서로 이야기 했죠? 저는 3-4-5-6-7-8-9-1-2-10의 순서대로 말씀드렸습니다. 1번부터 10번까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3번, 5번, 6번은 괄호 친 부분을 의도적으로 숨겼다가 9번 이후에 모든 사실을 밝혔습니다. 

    제가 1번부터 10번까지 원래의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 했다면 3번에서 남자가 의자에 묶인 사람에게 총을 쐈을 때, 7번에서 남자가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내려올 때 독자에게 긴장감이 생겼을까요?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사건이 일어난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을까요? 아닐 겁니다. 왜냐면 독자들은 이미 남자가 자고 있다는 걸,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작가의 의도대로 시간이나 사건을 재구성한 것을 플롯이라고 합니다. 시간 순서의 재구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거나 기존의 인물을 삭제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사건을 넣어보고, 기존의 사건을 빼기도 하면서 자신이 의도한 것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구성을 찾는 과정을 플롯을 세운다고 말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어떤 스토리가 떠오른다면, 그 스토리를 그대로 쓰지 말고 플롯을 세워보세요. 사건의 시간 순서를 바꿔보고, 공간을, 주인공을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며 최고의 구성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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