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를 날렸다. ‘날렸다’라는 표현만큼 나의 지난 3개월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공부를 하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말과 글로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사람이 배우려 노력하지않았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코딱지만큼 남아있던 일말의 직업정신까지 날려먹었던 것이 틀림없다.
1분기는 날렸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일을 했다. 20대 초반에 갔던 부산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20대때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선 난 혼자였고 참 외로웠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5년을 살던 집을 나와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태어나 처음 주택대출을 받았고 부동산 계약부터 이삿짐싸기까지 전부 혼자 해냈다.
새로운 집은 남향이라 햇빛이 잘들고 좀 멀긴 하지만 산 봉우리가 정면으로 보인다.새 방이 생기며 우울증도 많이 나아졌다.
충동적이긴 했으나 퇴사를 선언했(고 붙잡혔다.) 4년전 첫 회사에서 퇴사를 지를 때의 나는 가진 것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때보단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됐다.
2분기를 맞이하며, 내가 정말로 1분기를 날린 것이 맞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앞에 앉아 읽고 쓰는 행위를 배움으로 한정하지만 않는다면 난 참 많은것을 새로 경험하며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합리화를 해봐도 난 1분기를 날린 것이 맞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찐’어른이 된 것은 맞는 것 같다.나는 이렇게 적당히 스스로와 타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