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1 아가씨는 히데코가 살던 세상이 숙희로 인해 송두리째 무너진 이야기. 그로 인해 히데코가 구원받은 이야기.
#2 히데코가 살던 이모부의 집. 그곳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모부가 중심인 세상이었다. 불쌍한 히데코는 살아남기 위해 애써 교활한 체 해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의 내면이 텅 비어가는 걸 마주보는 일은 비참하니까. 그러나 자신을 알아봐준 단 한 사람만큼에겐 마음을 온전히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숙희였다.
#3 왜 하필 숙희였을까? 거꾸로 본다면, 숙희 말고 아가씨가 마음을 열 만한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백작은 겉보기에 속물같은 히데코에게 같은 편인양 접근해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의리없는 순 사기꾼. 하지만 숙희는 달랐다. 히데코의 이를 갈아주었고, 씻겼고, 재워주었고, 바보같이 계획에 없던 사랑에 빠져버렸다. 사랑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상대를 살뜰히 살펴보게 한다. 또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움직이는 동력, 그것이 사랑이 아닌가.
#4 그러니까 ‘아가씨’는 지옥 같은 세상 속 유일한 내 편을 알아보는 이야기였다. 나를 속박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반드시 아군이 필요하다. 저 깊숙한 곳에 체념하고 묻어둔 아픔까지도 같이 분노해줄 내 편. 숙희가 "아니, 그 자식들이 이딴 것들을 아가씨에게 읽혔단 말이에요?"하고 성을 냈을 때, 히데코는 비로소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설 용기가 났으리라. 숙희가 "잘못했어요, 아가씨. 죽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하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을 때, 히데코 조금은 더 살아봐도 좋겠다 싶었으리라.
#5 그들이 느낀 해방감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주변인들의 삶을 돌이켜본다. 술자리에서 동기의 모욕적인 말에 억지로 웃어 넘겼다가 화장실에서 한참 마음을 삭혀야 했던 후배, 여자애가 조심성 없게 술 마시고 늦은 시간에 들어오냐는 핀잔이 일상인 친구, 남편과 시댁을 평생 뒷바라지 해온 엄마. 그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은 누군가에겐 보이고, 누군가에겐 평생을 함께 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들이 오롯이 감내할 무게를 짐작하면서, 나도 자유롭지 못함을 부지불식 간에 깨달았다고 해아할까. 일상 속 당연한 부당함을 알아보는 사람은 사실 정말 희귀하다는 것을, 같은 편에 서 줄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는 것을.
#6 내 편 한명 한명이 새삼스럽게 소중해지는 요즘, 다시 영화 아가씨 생각이 났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져도 페미니즘에선 내 발 아래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야심따위는 찾기 어렵다. 그러니 편이 되어줄 자신이 도저히 없다면 차라리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는 편이 낫겠다.
자꾸만 히데코가 들판을 달리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래된 저택을 나와 들판으로 나서기 전, 그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은 기껏해야 무릎 높이의 돌담이었다. 고작 그정도여도 숙희가 여행가방을 놓고 디딤돌을 만들어주기 전까진 오르지 못했다. 마침내 올라선 그 순간 히데코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수많은 감정들, 그것들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전부 뒤로 하고 들판을 내달리던 그의 표정. 행복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