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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Feb 29. 2020

아무도 나대신 아파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을 종종 겪게 된다. 한 날 한 시에 입사했는데 누구는 좋은 부서에 배치를 받아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고, 누구는 지저분한 부서에 배치를 받아서 매일 야근하면서 고생을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같은 부서 내에서도 품목 배치에 따라서 누구는 쉽게 실적을 낼 수 있는 품목을 맡게 되어서 매일 놀면서 일해도 실적 좋다고 윗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누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비전이 없는 품목을 맡아서 매일 고생만 하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도 실적이 부족하다고 항상 윗사람한테 핀잔만 듣는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K대리는 주요 거래처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미수채권 7억이 발생하여 그것 해결하느라 1년을 허비했다. 기본적으로는 거래처가 부도가 나도 영업사원은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 판매 전에 담보물을 챙기고 그 담보물의 평가금액 한도 내에서 판매가 이루어지니 혹시 거래처가 부도가 나면 그 담보물을 처분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담보물의 평가금액 한도를 초과하여 판매를 할 경우 그 한도를 넘긴 부분은 고스란히 영업부서 책임이 된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말단 대리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담보물의 평가금액 한도를 넘어서 판매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부서장의 결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당연히 그것은 부서장의 결재 하에 이루어졌다. 부서장이 그 거래처 사장과 어떤 긴밀한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K대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부서장이 바뀌었는데 새로 온 부서장은 담당자인 K대리한테 사고를 수습하라고 지시했던 것이었다. 같은 부서 동료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위로의 말, 그리고 저녁의 소주 한 잔 뿐이었다. 나도 맡은 바 업무가 있었으니 그의 업무를 나눠서 같이 해줄 수가 없었고, 부서 내에서도 그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프면 나만 아프다. 옆에서 누군가가 그 고통을 나누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심적인 부분이지 육체적 고통은 조금도 가져갈 수가 없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동기들은 모두 진급했는데 나만 진급 못했다면 위로주 한두 잔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동기들 보다 직위가 낮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 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는 걸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내가 잘 되면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래서 같이 그 기쁨을 나누면 배가 아니라 몇 배가 된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영업적이든 개인적이든 조사에 참석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슬픔을 당한 지인을 위로하면 지인의 아픔이 많이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의 아픔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위로가 된다. 그래서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하지만 사업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내가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있으면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겠지만, 나의 사업이 나빠지면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떠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피해를 당하면 어느 누가 그 반을 가져갈 수 있겠는가? 그저 단순한 위로의 말 말고는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사업이 잘 되면 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의 절반은 뭔가 목적이 있다. 사업에 성공한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은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큰 어려움을 겪고 다시는 동창회에 안 나간다고 한다. 동기들 끼리 인사하는 와중에 명함을 줬는데 그 명함을 보고 차 영업하는 친구들이 차 팔아달라고 계속 연락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내가 사업이 어려워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무역업을 줄이고 부동산중개사무소를 개업했을 때 지인들이 찾아와서 축하는 해줬지만 그리곤 끝이었다. 말로는 ‘대박나라’고 덕담을 해줬지만 그건 그냥 말뿐이었다. 이미 나는 그들에게는 영양가가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명심하라. 아무도 나대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이 직장에서 이유 없이 해고를 당해도 아무도 당신대신 아파하지 않는다. 같은 입장에 처한 사람들끼리 복직을 위해서 싸우고 위로를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 역시 위기상황에 처하면 먼저 움직이면서 당신을 등한시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동료들을 비난하지는 마라.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사람이다. 그저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스스로 대책을 만들어 놓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다. 절대 그런 일은 없으리라 장담하다가 큰 코 다치지 말고 지금 여유가 있을 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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