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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Mar 18. 2023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친근함을 가장한 폭력

한껏 경직되어 있는 신입에게  선배직원이 웃으며 다가온다.

우리는 같은 부서니까 모르는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물어보란다. 첫 출근에 뭘 어떻게 해야 하고, 누가 누군지 이름도 몰라 마냥 경직되어만 있는 신입 입장에서 선배직원의 말이 마냥 고맙게 느껴진다.

왠지 직장생활의 시작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세상은 따뜻한 동화이야기가 아니다.


이자까야  선생님,

.. 선.... 그냥 이자까야라고 편하게 말해도 되지?(그는 '존댓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내는 이상한 화법을 구사했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더글로리'의 넝담쌤


그는 내게 질문을 한 것인가, 아니면 질문을 가장한 위계를 강요한 것인가?


그렇게 시작된 그의 말에 내 직장생활의 지옥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자까야  선생님. 내가 선배니까 이자까야라고 편하게 반말해도 되지?"라는 말은 '내가 선배이고 네가 만만해 보이니까 이제부터 내가 막대해도 되지'라는 뜻이었다. (하긴 그는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만 골라서 그런 식으로 찍어 누르곤했다. 반대로 강해 보이거나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렸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이다)


그런 류의 사람은 처음엔 친근해 보이는 말로 포장하며 접근한다. 그리곤 곧 상대방에게 위계질서를 종용하며 자신의 발 아래 두려한다.

신입이던 그때의  내가 그 상황에서 대답할 수 있는 말은 두 버전이었다. 


Version 1.

 선배님, 반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강하게 항거하는 것.

그러나 이건 그 선배 직원과 싸우자는 뜻이다.  새파란 초짜 신입은 그럴 깜냥은 없었다.


Version 2.

ㅡ아. 네... 선배님, 편하게... 말씀 놓으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다른 신입들도 선임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신입이 입사하자마자 선배직원과 갈등을 만들길 원하겠는가?)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직작은 가족모임도, 친교를 위한 동호회도 아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편하게 반말해도 되지'라는 말은 선후배를 막론하고 '내가 너보다 위'라는 위계질서, 또는 연공서열,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일종의 또 다른 폭력이다.


역시나 처음부터 반말로 위계를 내세우던 선임은 신입에게 이래라, 저래라, 다시 해라라며 조언을 가장한 간섭과 사적 개입을 시작한다. 과도한 업무지시 및 시도 때도 없는 개인 문자와 톡, 그리고 자신의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화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강요하였다. 스킨십까지 친근함이라는 허울아래 허락 없이 하여 수치심을 주기도 했다.  결국 그 신입은 위염에 시달리며 위장약을  오랜 기간 동안  먹어야 했다.


호칭에서도, 반말, 존댓말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존부( 存否 )'가 결정된다. 말은 곧 인성과 품성을 담는 그릇이다.


ㅡ내가 선배니까 편하게 반 말해도 되지?  이자까야~?


ㅡ 아니요. 선배님. 존대해 주십시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당당히 말했을 것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가족은커녕 지나가는 행인만도 못하더라.


그런 류의 사람들은 가족(family)이 아니라

가( )족(族)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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